예비군 원격교육이 2026년, 조용히 사라졌다.
“집에서 영상 보고 끝”이던 시절이 끝났다.
올해부터 남편은, 남자친구는, 아들은 더 오래 훈련장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훈련비는 시급 833원이다.
김밥 한 줄도 못 사는 돈.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이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모아보니, 꽤 흥미로운 흐름이 보였다.
2020년, 코로나가 모든 걸 바꿔놓던 그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비군 원격교육의 시작. 코로나가 만든 꿀 제도
2020년 8월 21일.
국방부가 역사적인 발표를 했다.
“52년 만에 처음으로 예비군 소집훈련을 전면 취소합니다.”
1968년 예비군 제도가 생긴 이래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코로나19 확산이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국방부는 비대면 원격교육을 도입했다. 희망자만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안 해도 그해 훈련은 전원 이수 처리. (조선일보, 2020.8.21)
사실상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해가 된 것이다.
그리고 2021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2년 연속 소집훈련 취소.
예비군 남성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인식이 퍼졌다.
“원격교육 들으면 내년에 2시간 일찍 퇴소할 수 있대.”
“2년 치 다 들으면 4시간 차감이래.”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예비군 조기퇴소 꿀팁의 시작이었다. (블로그 후기, 2022.7.12)
예비군 원격교육, 10명 중 6명이 안 했다
그런데 이 꿀 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아무도 안 한다는 것.
2021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충격적인 숫자가 공개됐다. 원격교육 대상 158만 명 중 실제로 이수한 사람은 59만 명. 참여율 37.1%. (세계일보 단독, 2021.9.29)
10명 중 6명 넘게 그냥 안 한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안 해도 처벌이 없었다.
소집훈련에 안 가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원격교육은 법적으로 예비군훈련에 포함되지 않았다. 강제할 수도 없었다. 국방부 관계자도 인정했다. “원격교육을 법적으로 강제하면 범죄자를 양산할 수 있다.”
어차피 안 들어도 그해 훈련은 이수 처리되니, 굳이 시간을 내서 영상을 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20일까지라면서요?” 마감일 하루 전 종료 사건
그래도 열심히 원격교육을 들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
2022년 12월. 원격교육 수강 기간이 “12월 7일에서 20일”로 공지됐다. 마지막 날인 20일에 몰아서 들으려던 예비군들이 접속했더니, 이미 시스템이 꺼져 있었다. 20일 0시 0분에 종료된 것이다. 즉, 실제 마감은 19일 자정이었다. (인사이트, 2022.12.20)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혔다.
“20일까지라고 써놓고 왜 19일에 끊어?”
“이거 사실상 19일까지인 거 아닌가?”
미이수자들은 그 시간만큼 다음 해에 대면 소집훈련을 추가로 받아야 했다. 시간을 아끼려고 원격교육을 선택했는데, 오히려 시간을 더 쓰게 된 것이다. 피해자들은 단체 민원을 예고했다.
예비군 원격교육 폐지. 2026년, 결국 사라졌다
그리고 2026년 2월 27일.
국방부가 공식 발표했다.
“2026년부터 작계훈련 원격교육을 미시행합니다.”
2024년부터 2025년까지 2년간 6년차 예비군을 대상으로 시범운영한 결과, “작계훈련은 직접 몸으로 익혀야 하는 행동화 숙달이 필수”라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 이유였다. 원격교육으로는 실제 전투 상황에 필요한 역량을 키울 수 없다는 판단이다. (국방부 보도자료, 2026.2.27)
이로써 원격교육 이수를 통한 훈련시간 차감, 즉 조기퇴소 꿀팁은 완전히 사라졌다. (나무위키 예비군 훈련 기간)
2020년에 시작된 제도가 6년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예비군 원격교육은 사라졌는데, 훈련비는 시급 833원
원격교육이 없어졌다는 건, 대면 훈련 시간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5년에서 6년차 예비군은 이제 총 3일, 20시간을 소집훈련으로 채워야 한다.
그런데 이 시간에 대한 보상이 충격적이다.
2026년 작계훈련 훈련비를 시간으로 나누면, 시급 833원. 법정 최저시급 10,320원의 8% 수준이다. 올해 처음으로 훈련비가 신설된 건 맞지만, 체감은 거의 안 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한국경제, 2026.3.15)
식비도 논란이다. 하루 9,000원이 지급되지만, 2020년 이후 외식 물가는 폭등했다. 서울 기준 김밥 한 줄이 3,800원으로 2020년 대비 55% 상승했고, 순댓국은 1만 원이 넘는다. 한 전문가는 “식비 9,000원에는 인건비, 임대료, 마진이 다 포함되니 실제 식재료비는 3,000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들의 불만은 더 크다. 가게 문을 닫고 훈련에 참석하면 하루 매출을 통째로 잃는다. 이미 2022년에 자영업자 대상 예비군 손실보상법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아직도 계류 중이다. (이투데이, 2022.11.29)
최근 3년간 예비군 관련 민원은 무려 2만여 건. 코로나 이후 훈련이 재개되면서 2022년에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폭증했다. (국민권익위원회, 2023.4.12)
예비군 원격교육 그 이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
여기서 한 가지 더.
예비군 훈련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훈련비만이 아니다.
대학생 예비군이 훈련에 참석하면 수업에 빠져야 한다. 법적으로 결석 처리를 하면 안 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22년 서강대, 성균관대에서 시작된 예비군 결석 처리 논란은 2024년 서울대, 울산대까지 반복됐다. (중앙일보, 2022.12.13) (국민일보, 2024.5.24)
예비군법 제10조에는 예비군 훈련을 받는 학생을 결석 처리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그런데도 같은 문제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지금 흐름을 보면, 앞으로 이런 상황이 예상된다
여러 기사와 자료들을 쭉 모아서 들여다보니, 몇 가지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 국방부는 2030년까지 예비군 훈련비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뉴스데일리, 2025.12.31) 하지만 현재 시급 833원에서 10,320원까지 올리려면 12배 이상 인상해야 한다. 4년 안에 가능한 수치인지, 기획예산처 설득이 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둘. 원격교육이 폐지되면서 예비군 훈련 부담은 확실히 늘었다. 이전에는 원격교육으로 2시간에서 4시간을 줄일 수 있었지만, 이제 그 옵션이 없다. 훈련 시간이 늘어난 만큼, 자영업자와 프리랜서의 기회비용 손실도 함께 커졌다.
셋. 예비군법 개정안인 손실보상법은 2022년부터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유사한 법안이 3건이나 발의됐지만, 아직 본회의를 통과한 적이 없다. 한편 일본은 2025년부터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예비자위관에게 수당 32만 원을 추가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다음뉴스, 2025.2.26)
넷. 과학화 훈련장은 전국 40개소 목표 중 현재 29개소 완료. 드론 훈련은 2025년 육군 시범을 거쳐 2026년 4개 군종으로 확대 중이다. 훈련 내용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지만, 그에 맞는 보상 체계는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조기퇴소 방법은 사라졌고, 훈련 시간은 늘었고, 훈련비는 밥값도 안 된다.
국방부는 “올리겠다”고 했고, 국회에는 법안이 잠들어 있다.
이 간극이 얼마나 빨리 좁혀지느냐.
그 속도가 곧 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