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홀 민원의 시작, 그날 밤 도로가 차를 삼켰다
2024년 2월 21일 밤 9시 20분.
평택제천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들이 하나둘 멈춰 섰다.
타이어가 찢어진 거였다.
같은 자리에서.
한 대, 두 대. 무려 18대.
밤이라 아무것도 안 보였다.
염화칼슘이 녹여놓은 아스팔트가 쩍 갈라지면서 생긴 포트홀.
운전자들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멍하니 서 있었다.
(연합뉴스, 2024.2.22.)
이건 시작이었다.
포트홀 민원 급증, 5년간 4만 4천 건 그리고 사람이 죽었다
숫자부터 보자.
최근 5년간 고속도로에서만 포트홀 4만 4,239건.
배상 청구는 1,486건에서 6,568건으로 4.4배 폭증.
누적 배상액 154억 원 이상.
(우리가만드는뉴스, 2025.9.11.)
그런데 돈 얘기가 아니다.
사람이 죽었다.
2016년 7월, 전북 완주군.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한 남성이 가로 세로 15cm짜리 포트홀에 앞바퀴가 걸렸다.
그대로 쓰러져 도로 위를 미끄러졌다.
사망했다.
법원은 정부에 30% 책임을 인정했다.
(연합뉴스, 2018.7.20.)
15cm.
손바닥 하나 크기의 구멍이 사람 목숨을 앗아간 거다.
포트홀 민원 무시, 3주 전에 신고했는데 사람이 죽고 나서야
2025년 7월 16일 오후 7시.
경기 오산, 고가도로 옹벽이 무너졌다.
10m 높이의 콘크리트가 아래를 지나던 차량을 덮쳤다.
40대 운전자가 숨졌다.
(한겨레, 2025.7.17.)
SBS가 단독 보도한 사실.
사고 3주 전에 이미 포트홀 민원이 오산시에 접수돼 있었다.
시는 포트홀만 메웠다.
전문 업체에 점검을 맡겼더니 양호, B등급.
더 이상의 조치는 없었다.
사고 전날에도 지반이 꺼지고 있다는 민원이 또 들어왔다.
사고 당일에도 경찰이 지반 침하가 확인된다고 시에 알렸다.
그래도 오산시는 포트홀만 메우고, 고가도로만 통제했다.
옹벽은 아무도 안 봤다.
(SBS 단독, 2025.7.18.)
결국 오산시 공무원 3명이 형사 입건됐다.
포트홀 민원 접수 거부, 돌아온 답은 소송을 거세요
2025년 9월, KBS 팩트체크K 보도.
한 운전자가 고속도로에서 포트홀을 밟았다.
충격으로 트레일러 위 고정장치가 풀리면서 3천만 원짜리 제트스키 두 대가 망가졌다.
사고 지점에 한국도로공사 직원이 있었다.
그런데 포트홀 구간은 통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피해자가 도로공사에 연락했다.
돌아온 답은 이거였다.
접수 안 됩니다. 소송을 거세요.
적재물이 제대로 고정 안 됐을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KBS 팩트체크K, 2025.9.8.)
이 운전자만의 일이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4년 분석한 결과, 포트홀 민원의 9.8%가 배상 관련.
그중 가장 많은 불만은 이거였다.
시청에 전화하면 도청 소관이라 하고, 도청에 물으면 구청 소관이라 한다.
관할 기관을 찾는 것조차 시민 몫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 포트홀 민원분석 보고서, 2024.4.)
신고 시스템마저 무너진 날
2025년 9월 27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 불이 났다.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가 마비됐다.
그 안에 안전신문고가 있었다.
(연합뉴스, 2025.9.29.)
하루 3만 건 이상 접수되던 민원 창구가 한순간에 먹통.
한 달이 지나도 복구되지 않았다.
그 사이 접수되지 못한 민원, 추정 100만 건 이상.
(경인일보, 2025.10.28.)
안전신문고가 살아 있을 때도 문제였다.
2024년 3월, 경찰청의 스마트국민제보가 안전신문고로 통합됐다.
민원은 월 110만 건으로 폭증했는데 담당 공무원은 늘지 않았다.
접수된 민원 5건 중 1건은 진행 중 상태로 방치.
1주일이면 끝나던 처리가 수주간 멈췄다.
(한국경제, 2024.5.7.)
신고는 했는데.
처리되는지 알 수 없고.
시스템 자체가 불에 타기도 한다.
고쳐도 또 뚫린다 그게 땜질의 반복이었다
국민권익위 보고서에 올라온 실제 민원들이다.
보수해도 1주일이면 같은 자리에 또 포트홀이 생깁니다.
볼록하게 메워놔서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임시 포장이 아닌 재포장이 시급합니다.
지자체의 답변은 이랬다.
예산 확보하여 전면 포장할 수 있도록 검토 예정임을 알려드리오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검토 예정.
이해해 달라.
그게 전부였다.
(국민권익위원회 보고서, 2024.4.)
그리고 2025년 10월 17일 밤 11시.
남양주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에서 지름 1m, 깊이 20cm짜리 대형 포트홀이 뚫렸다.
차량 23대 타이어 파손, 운전자 2명 부상.
(연합뉴스, 2025.10.18.)
포트홀 민원과 보상의 미로, 보험 있는 도로 없는 도로
보상받으려면 일단 사고가 난 도로의 관리 주체를 알아야 한다.
고속도로면 한국도로공사.
국도면 국토교통부.
시도나 군도면 해당 지자체.
그런데 KBS가 2025년 3월 보도한 내용.
지자체마다 예산을 들여 시설물 보험에 가입했는데, 일부 도로만 보험에서 제외돼 있었다.
그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국가배상심의회에 신청하거나 민사소송을 직접 해야 한다.
(KBS, 2025.3.31.)
설령 보상이 되더라도 전액은 거의 불가능.
전방주시 태만 같은 사유로 운전자 과실이 20에서 80%까지 붙는다.
야간에 보이지도 않는 포트홀을 밟았는데, 왜 안 피했냐는 논리다.
(헤럴드경제, 2026.3.15.)
이 이야기들을 모아보니 하나의 흐름이 보였다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쭉 놓고 보니 묘한 패턴이 발견됐다.
2024년 2월, 평택제천고속도로 포트홀로 차량 18대 동시 피해.
2024년 5월, 안전신문고 통합 후 민원 처리 병목, 5건 중 1건 방치.
2025년 3월, 일부 도로 보험 미가입 사실 보도.
2025년 7월, 오산 옹벽 붕괴, 3주 전 포트홀 민원 무시, 40대 사망.
2025년 9월, 도로공사 피해 접수 거부, 소송하라 보도.
2025년 9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안전신문고 한 달간 먹통.
2025년 10월, 남양주 고속도로 대형 포트홀, 23대 피해에 2명 부상.
2026년 3월, 봄철 해빙기, 포트홀 배상 청구 5년 새 4.4배 급증 보도.
민원을 넣어도 처리가 안 되고.
처리가 돼도 땜질이고.
땜질해도 다시 뚫리고.
사고가 나도 보상은 미로이고.
신고 시스템 자체가 멈추기도 한다.
그래서 발견한 게 있다.
내 민원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 누가 처리하고 있는지, 정말 제대로 고쳤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가 이슈가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배달 앱으로 음식이 어디쯤 오는지 실시간으로 보는 시대다.
내 안전과 직결된 도로 수리 민원은 접수 후 깜깜한 상태.
이 간극이 얼마나 더 벌어질 수 있을지.
그 판단은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