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운전 마일리지.
이름만 들으면 “뭐 그런 게 있어?” 싶다.
그런데 이 제도 하나에 면허를 지킨 사람이 있고, 음주운전자의 면죄부가 된 적도 있고, 국정감사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지금부터 이 제도에 얽힌 11년간의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풀어본다.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이다.
착한운전 마일리지의 시작. 2013년, 서약 한 장이면 벌점이 깎였다
2013년 8월, 경찰청이 하나의 제도를 만들었다.
“1년간 무사고·무위반을 지키면 10점을 드립니다.”
이 10점은 나중에 면허정지 처분을 받을 때 벌점에서 깎을 수 있다.
매년 쌓이고, 최대 50점까지 모을 수 있다.
신청은 무료. 횟수 제한도 없다.
한번 서약하면 1년 뒤 자동 갱신까지 된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행 5개월 만에 경기지역에서만 가입자 115만 명을 돌파했다.
(경기일보, 2020.1.8)
양궁 국가대표 기보배 선수, 수원삼성 축구단도 가입했다.
전국 기준으로 2014년에 가입자 300만 명을 넘겼다.
착한운전 마일리지로 직업을 지킨 사람. 이 제도 아니었으면 끝이었다
대구의 관광버스 기사 안모(52)씨.
2016년, 벌점이 쌓여 면허정지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미리 쌓아둔 착한운전 마일리지로 벌점을 공제했다.
면허정지를 피했고, 직업도 지켰다.
“이 제도가 아니었으면 직업을 잃을 뻔했습니다.”
(영남일보, 2016.5.19)
이런 사례들이 퍼지면서
운전면허 있으면 무조건 가입하라는 말이 인터넷에 돌기 시작했다.
착한운전 마일리지의 치명적 반전. 음주운전자 71%가 사용했다
여기서 이야기가 반전된다.
2018년 10월, 국정감사.
바른미래당 주승용 의원이 하나의 숫자를 공개했다.
착한운전 마일리지를 실제로 사용한 3만 4,706명.
그중 71.2%인 2만 4,717명이 음주운전자였다.
(경향신문, 2018.10.25)
구조는 이랬다.
음주운전 적발되면 면허정지 100일 처분.
마일리지 50점 사용하면 50일 감경.
교육 이수하면 의무 20일, 권장 30일 추가 감경.
합산하면 정지일수 0일.
사실상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보복운전과 난폭운전으로 면허정지된 1,747명도 마일리지를 써서 정지일수를 줄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시아경제, 2018.12.3)
헤럴드경제는 더 구체적인 수치를 보도했다.
마일리지 50점 만점 보유자가 66만 2,576명.
이들 모두가 음주운전을 하더라도 벌점 감경이 가능한 상태였다.
(헤럴드경제, 2018.10.16)
도로교통공단 박무혁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신호위반이나 과속 적발 시 모범 운전 경력을 참작해 감경하는 건 긍정적이지만, 음주운전까지 일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윤창호 사건, 그리고 제도가 바뀌다. 2018년 가을
같은 해 9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윤창호씨가 부산 해운대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BBC 코리아, 2018.11.12)
전국적 공분이 일었고 윤창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음주운전 사망사고 시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능해졌다.
(문화일보, 2018.12.7)
이 분위기 속에서 착한운전 마일리지의 음주운전 면죄부 논란도 함께 수면 위로 올라왔다.
경찰청은 즉각 움직였다.
2019년 6월, 사망사고와 음주운전, 보복운전, 난폭운전에 대해 마일리지 사용을 금지했다.
2019년 12월, 국민권익위원회는 한발 더 나아가 자동차를 범죄 도구로 사용하거나 훔쳐 운전한 경우에도 마일리지 사용을 제한하도록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개정을 권고했다.
(국민권익위원회, 2019.12.12)
2020년 9월, 개정된 시행규칙이 시행됐다.
범칙금과 과태료 미납자의 가입도 금지됐다.
(포켓프레스, 2020.9.25)
정리하면 이렇다.
한 사람의 죽음이 법을 바꿨고, 제도의 허점도 메워졌다.
착한운전 마일리지, 그런데 아무도 몰랐다. 가입자 절반이 사라진 이유
제도가 개선되는 동안 다른 문제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가입자가 빠지고 있었다.
경기지역 가입자 수.
2013년 115만 명.
2018년 65만 8천 명.
2019년 62만 8천 명.
5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원인은 단순했다. 홍보가 사라졌다.
시행 초기에는 유명인 가입, 언론사와 기업 업무협약, 대대적 캠페인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사라졌다.
동국대 곽대경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런 제도가 있는지 생소하다. 일반 운전자들은 더욱 생소할 것.”
(경기일보, 2020.1.8)
착한운전 마일리지, 교통사고를 줄였을까. 데이터가 말하는 것
2022년, 인천일보가 인천경찰청 자료를 분석했다.
가입자는 매년 15만에서 18만 명 수준.
그런데 서약을 지키지 못해 마일리지가 소멸된 사람이 매년 2만 1,000명에서 2만 5,000명이었다.
2020년 인천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전년 대비 2.3% 감소에 그쳤다.
인천경찰청 관계자의 답변.
“착한운전 마일리지제가 교통사고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인천일보, 2022.2.9)
시민들 사이에서 이 제도의 인식은 안전운전 장려가 아니라, 혹시 모를 벌점에 대비하는 무료 보험이었다.
착한운전 마일리지의 숨겨진 함정. 자동 갱신이라면서 왜 알려주지 않는가
이제 현재 시점의 이야기다.
착한운전 마일리지는 1년 무사고와 무위반이면 자동 갱신된다.
매년 서약서를 다시 쓸 필요가 없다.
편리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첫째, 마일리지를 쌓아도 자동 적용이 안 된다.
벌점이 쌓여 면허정지 처분을 받게 되면?
경찰이 알아서 마일리지를 깎아주지 않는다.
본인이 직접 관할 경찰서를 방문해서 마일리지 쓰겠다고 말해야 한다.
이의제기 기간을 놓치면? 그대로 면허정지.
(이투데이, 2025.4.28)
(헤드라인제주, 2024.11.27)
둘째, 갱신 안내가 전혀 없다.
문자도 없다. 전화도 없다. 안내문도 없다.
마일리지 현황, 소멸 여부 모두 본인이 이파인에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야 한다.
2년간 사용하지 않으면 마일리지는 자동 소멸된다.
위반이나 사고가 나면 즉시 소멸. 복구는 불가능하다.
지금 이 상황이 가리키는 것
여러 기사를 조합해보니 하나의 흐름이 보였다.
하나. 착한운전 마일리지는 2013년 도입 후 초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둘. 그러나 음주운전자의 면죄부로 악용되었고, 2018년 국정감사와 윤창호 사건을 계기로 사용 제한 규정이 만들어졌다.
셋. 홍보가 사라지면서 가입자가 절반으로 줄었다가, 최근 SNS와 유튜브를 통해 다시 알려지며 290만 명 수준으로 회복됐다.
넷. 교통사고 예방 효과는 경찰 스스로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다섯. 자동 갱신이라는 편리한 구조 뒤에, 자동 적용은 안 되고 알림도 없는 구조가 숨어 있다.
이 제도는 지금 무료라서 안 하면 손해라는 심리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동시에, 정작 필요한 순간에 쓰지 못하는 사람도 계속 생기고 있다.
두 가지 사실이 동시에 존재한다.
어떻게 판단할지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