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스마트폰이 주머니에 있는 것만으로 교통비가 빠져나간다. 태그리스 결제. 이름만 들으면 너무 편해 보인다. 카드를 꺼낼 필요 없이, 그냥 버스에 타면 끝. 그런데 지금, 이 시스템을 둘러싼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36억 원의 세금이 투입됐는데 이용률은 0.04%. 하루 8,000건의 꼼수 하차가 적발됐고, 이제 못 찍으면 1,550원이 자동으로 빠진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따라가봤더니, 지금 벌어지는 일들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그리스 결제의 시작, 코로나가 만든 비접촉의 욕망
2020년, 코로나가 터졌다. 버스 안에서 단말기를 만지는 것조차 공포가 됐다. 사람들은 접촉을 피하고 싶었다. 대중교통 이용률은 급감했고, 손을 안 대도 되는 결제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생겼다.(한국운수산업연구원, 2021)
경기도는 2021년, 전국 최초로 광역버스에 태그리스를 도입했다. 스마트폰 블루투스만 켜두면 자동 결제. 대중교통의 하이패스라는 슬로건이었다.(경기도 뉴스, 2023.1)
세계대중교통협회(UITP)에서 2년 연속 혁신 대상까지 받았다. 세계가 주목한 K-기술.
그런데 정작 시민들은 쓰지 않았다.
태그리스 결제에 36억, 이용률은 0.04%
경기도가 5년간 태그리스 구축에 쏟아부은 예산은 약 36억 원. 버스 한 대당 80만 원씩, 총 4,600대에 장비가 설치됐다.(중부일보, 2025.8)
그런데 2025년 8월 기준, 전체 교통카드 결제 약 1억 건 중 태그리스는 5만에서 6만 건. 이용률 0.04%. 사실상 아무도 안 쓰는 수준이다.(경기일보, 2025.10)
버스가 증차될 때마다 설치비가 추가로 들어간다. 2024년에만 270대 증차분에 약 2억 1,600만 원이 더 들었다. 이용률은 떨어지는데, 예산은 계속 늘어나는 구조다.
환승하면 무용지물. 경기와 서울과 인천이 따로 논다
왜 안 쓸까.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다. 환승이 안 된다.
경기도 광역버스에서 태그리스로 타도, 서울 지하철로 갈아탈 때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직접 찍어야 한다. 경기, 서울, 인천. 세 지역의 시스템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기호일보, 2023.7)
경기도 도민의 22%가 서울과 인천으로 출퇴근한다. 그들에게 태그리스는 갈 때만 편한 반쪽짜리다. 경기도는 2023년 국토부에 기술 표준화를 요청했지만, 국토부가 본격적으로 전국 표준화 계획을 발표한 건 2025년 12월이다.(연합뉴스, 2025.12) 4년 넘게 호환 없이 방치된 셈이다.
아이폰은 사용 불가. 청년 10명 중 6명이 차단
또 하나의 결정적 문제. 태그리스는 안드로이드 전용이다. 아이폰에서는 아예 쓸 수 없다.
한국갤럽 2025년 7월 조사 결과, 18세에서 29세 청년의 아이폰 사용률은 60%. 이 기술을 가장 빨리 받아들일 세대가, 이 기술에서 원천 차단돼 있다.(인천대 미디어, 2025.11)
혁신이라고 했는데, 젊은 층 10명 중 6명은 구경조차 못 하는 혁신.
태그리스 결제의 기술적 불안. 안 탄 버스 요금이 빠졌다는 이야기
태그리스는 블루투스 기반이다. NFC보다 인식 범위가 넓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가 있다.
정류장에 버스 두 대가 나란히 서 있으면, 옆 버스 신호에 결제가 잡힐 수 있다. 혼잡 시간대엔 중복 감지, 결제 실패도 발생한다.(아시아경제, 2025.6)
티머니 측은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중 결제 발생 시 환급 절차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이코리아, 2025.10)
런던도 같은 블루투스 기반 핸즈프리 시스템을 시험했다. 결과는? 혼잡 시간대 오탐이 너무 잦아서 대규모 상용화를 보류한 상태다.
태그리스 결제를 쓰려면, 내 위치를 항상 내줘야 한다
태그리스를 쓰려면 조건이 있다. 블루투스와 GPS 위치정보를 항상 허용 상태로 켜둬야 한다. 버스에 탈 때만이 아니다. 항상.
이건 곧, 사용자의 실시간 이동 경로가 지속적으로 수집된다는 의미다. 중국에서도 유사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다가 이동 경로와 위치 데이터의 과도한 수집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고, 결국 데이터 저장 기간과 활용 범위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이코리아, 2025.10)
일본은 아예 방향이 다르다. NFC 기반의 스이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단말 간 간섭이 거의 없고, 데이터 수집 범위가 제한적이라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평가가 좋다.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별도의 보호 장치나 공론화가 이뤄진 적이 없다.
하루 8,000건 꼼수 하차, 태그리스 시대에 터진 요금 회피
태그리스가 확산되기 전에 먼저 해결했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지하철 하차 미태그.
서울교통공사가 2025년 1월부터 11월까지 하차 미태그 건수를 분석한 결과, 하루 평균 8,000건이 적발됐다. 지하철만 타고 하차 때 태그를 안 하면 거리비례 추가 요금이 빠지지 않는 허점이 있었다. 이걸 고의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매일 수천 명이었다.(헤럴드경제, 2026.3)
배경을 보면 이해가 된다. 서울교통공사의 누적 적자는 2025년 기준 19조 2,683억 원. 무임승차 손실만 매년 4,000억 원대다.(서울경제, 2025.1) 지하철 기본요금은 2023년 1,250원에서 2025년 6월 1,550원으로 2년 새 300원이 올랐다.(중앙일보, 2025.6)
요금은 올리는데 요금 회피는 막지 못하는 상황. 결국 2026년 3월 7일, 하차 미태그 페널티 제도가 시행됐다. 하차 태그를 안 하면 다음 승차 시 기본 운임 1,550원이 자동 추가 부과된다.(연합뉴스, 2026.2)
시행 첫 5일간 결과. 1만 3,899건, 총 2,127만 원의 페널티가 부과됐다.(헤럴드경제, 2026.3)
태그리스 결제 확대와 페널티, 동시에 가는 이 모순
여기서 퍼즐이 맞춰진다.
한쪽에서는 카드를 찍지 마세요, 자동으로 해드릴게요 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카드 안 찍으면 벌금입니다 라고 한다.
태그리스는 태그 없이 통과를 지향한다. 그런데 지금 시스템은 태그리스가 안 되는 구간, 안 되는 기기, 안 되는 환승이 대부분이다. 그 사이에서 태그를 놓치는 사람에게는 자동으로 1,550원이 빠진다.
국토부는 2025년 12월에야 전국 태그리스 표준화 R&D를 발표했다. 3년간 120억 원 규모다.(매일건설신문, 2025.11) 경기도가 이미 36억 원을 쓴 시스템은, 표준화가 되면 호환이 안 돼서 다시 교체해야 할 수도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토부가 표준화된 기술을 내놓으면 우리 쪽 기술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추가 예산이 더 들 수 있다고.(중부일보, 2025.8)
지금까지의 흐름을 정리하면
사건의 흐름을 시간순으로 놓으면, 하나의 그림이 된다.
2020년. 코로나 확산. 비접촉 결제 요구 급증. 2021년. 경기도, 전국 최초 광역버스 태그리스 도입. 2023년. UITP 세계 혁신상 수상. 하지만 이용률 1% 미만. 경기에서 서울로 환승 불가 확인.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지하철과 버스 요금 연속 인상. 1,250원에서 1,550원으로. 서울교통공사 누적 적자 19조 돌파. 2025년 6월. 서울시, 시내버스 36개 노선 태그리스 시범 발표. 2025년 10월. 서울 시내버스 590대 태그리스 시범 운영 시작. 이중 결제 환급 규정 미비 확인. 2025년 12월. 국토부, 전국 태그리스 표준화 R&D 발표. 3년간 120억 원. 2026년 3월 7일. 하차 미태그 페널티 제도 시행. 첫 5일간 1만 3,899건 적발.
이 흐름 끝에서 발견한 것
이야기들을 하나씩 모아서 시간순으로 놓아봤다. 그랬더니 보이는 게 있었다.
태그리스 기술 표준화는 2025년 12월에야 시작됐고 완성까지 3년이 걸린다. 그 사이 경기도에 이미 투입된 36억 원의 장비가 새 표준과 호환될지는 불확실하다. 아이폰 지원 시점도 정해진 것이 없다. 이중 결제 환급 규정도 아직 없다.
반면 하차 미태그 페널티는 즉시 시행됐다. 5일 만에 2,127만 원이 징수됐다.
편의를 위한 시스템이 완성되기 전에, 벌금 시스템이 먼저 완성된 모양새다.
이걸 어떻게 볼 것인지는,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정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