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공유자전거 시대가 열렸다.
2025년 4월, 서울시 따릉이에 가족권이 생기면서 만 13세 미만 아이도 부모와 함께 자전거를 빌릴 수 있게 됐다.
1시간에 1,000원. 앱 하나로 2대 동시 대여.
주말 나들이의 문턱이 확 낮아졌다.
그런데.
이 편리함이 만들어지기까지, 꽤 긴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쭉 모아서 보니,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이 공유자전거의 시작, 15세 소년의 한마디가 바꿨다
2019년, 서울에 사는 15세 소년이 이런 말을 했다.
“어른들은 따릉이를 쉽게 빌려 타는데, 저한테는 너무 크고 대여도 안 돼요.”
굿네이버스 아동권리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하던 이 학생은 서울시에 직접 아동용 자전거를 제안했다.
서울시는 이걸 받아들였다.
(중앙일보) 만15세에서 13세로 따릉이 연령 낮춘 건, 공무원 아닌 15세 아이
2020년 12월, 바퀴 20인치에 무게 16kg인 소형 자전거 새싹따릉이가 탄생했다.
이용 가능 연령도 만 15세에서 만 13세로 낮아졌다.
(한겨레) 어린이도 탈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새싹따릉이 달린다
그리고 2025년 2월, 서울시 규제철폐 보고회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만 13세 미만도 부모 동반이면 탈 수 있도록 연령 제한을 아예 푼 것이다.
(한국경제) 초등학생과 유치원생도 탄다, 따릉이 연령제한 완화
2025년 4월 23일, 따릉이 가족권 정식 출시.
부모가 앱에서 자녀를 등록하면, 스마트폰 하나로 자전거 2대를 동시에 빌릴 수 있다.
(서울시) 봄맞이 우리 가족, 따릉이 타고 나들이 해요
어린이 공유자전거, 할머니랑 사는 아이는 못 탄다고?
그런데 이 가족권에는 조건이 있다.
행정안전부의 행정정보공동이용시스템으로 부모와 자녀 관계를 인증해야 한다.
주민등록상 직계비속 1세대만 가능하다.
이게 뭔 뜻이냐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조손가정 아이는 이 시스템을 쓸 수 없다.
부모가 없는 아이는 가족권 자체를 구매할 수 없다.
(더스쿠프) 주민등록상 부모 없는 아이는 못 타는 따릉이의 차별
이 기사를 보다가 흥미로운 비교를 발견했다.
인스타그램조차 청소년 계정 정책에서 부모가 아닌 선생님도 보호자로 설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민간 SNS보다 유연하지 못한 공공 서비스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시는 행안부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어린이 공유자전거 사고, 숫자를 모아보니 보이는 것들
편리함 뒤에 숫자들을 모아봤다.
최근 5년간 만 13세 미만 어린이 자전거 안전사고는 총 3,792건.
같은 기간 만 14세에서 19세 사고(2,195건)보다 72.8% 더 많다.
2024년 한 해만 893건. 줄지 않았다.
(더스쿠프) 같은 기사 내 한국소비자원 CISS 데이터 인용
20세 이하 자전거 운전자 사고는 2023년 1,077건에서 2024년 1,620건으로 50.4% 급증.
전체 자전거 사망자도 64명에서 75명으로 17.2% 늘었다.
(경향신문) 청소년 자전거 사고 50.4% 급증, 픽시족 법으로 막는다
2025년 7월, 서울 관악구.
중학생이 브레이크 없는 픽시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달리다 멈추지 못했다.
에어컨 실외기에 부딪혀 사망했다.
(한국정책브리핑) 위험천만 픽시자전거 단속을 환영합니다
2026년 2월, 포항.
13세 초등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던 중,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미니버스에 치여 사망했다.
(영남일보) 포항 스쿨존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초등학생
그리고 결정적인 데이터 하나가 더 있었다.
최근 5년간 킥보드와 자전거 어린이 사망 5건 중 4건이 헬멧 미착용이었다.
자전거 사고로 응급실에 온 어린이의 헬멧 착용률은 4.6%에 불과했다.
(서울뉴스통신) 킥보드와 자전거 어린이 헬멧 미착용 사망
(연합뉴스) 자전거사고 40%는 아동과 청소년, 헬멧 착용률 4.6%
가족권 구매 시 헬멧 착용 의무가 앱에서 안내된다.
하지만 공유자전거는 원래 헬멧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게 특징이다.
앱의 안내문 한 줄이 현장에서 얼마나 작동하는지는, 이 숫자들이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발견한 것이 있다.
따릉이 보험의 사망 보상금은 최대 2,000만 원인데, 만 15세 미만은 사망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서울자전거 따릉이) 보험안내
가족권으로 탄 만 13세 미만 어린이가 사고로 사망할 경우, 보험 보상 체계가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안내는 현재 공개된 정보에서 찾을 수 없었다.
어린이 공유자전거 앱에 등록한 내 아이 정보, 이 시스템 괜찮은 걸까
2024년 6월 28일부터 29일까지 이틀.
중학생 2명이 따릉이 서버에 침입했다.
462만 건의 개인정보가 빠져나갔다.
아이디, 생년월일, 전화번호, 주소, 몸무게.
(조선일보) 따릉이 개인정보 462만건 턴 해킹범들, 10대였다
이들은 해킹 전문가가 아니었다.
독학으로 배웠다.
서버에 인증 토큰 절차가 빠져 있었고, 외부에서 특정 값만 입력하면 누구나 정보를 볼 수 있었다.
보안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면 매우 초보적인 취약점이었다.
(동아일보) 중학생에 털린 따릉이, 정보유출 알고도 초기대응 부실
이 부분을 추적하다 보니 더 놀라운 사실이 나왔다.
서울시설공단은 해킹 20일 뒤 보안업체로부터 유출 확인 보고를 받았다.
웹 방화벽만 설치했다.
이용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신고도 하지 않았다.
2년 가까이.
(중앙일보) 따릉이 450만명 정보 해킹, 서울시설공단 알고도 2년 뭉갰다
(연합뉴스) 따릉이 개인정보유출 2년전 알고도 모른척
경찰이 2024년 4월 별건, 민간 공유 모빌리티 디도스 공격 수사 중에 따릉이 정보를 발견하면서 비로소 드러났다.
누적 회원 500만 명 중 462만 건. 전체의 90% 이상이었다.
(더스쿠프) 따릉이 해킹 사건의 실체, 중학생에게 털리고 털린지도 몰랐다
가족권은 바로 이 시스템 위에 만들어졌다.
자녀의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부모의 이름과 주민번호로 가족 인증을 한다.
이 시스템의 보안 수준이 어떤 상태였는지는, 위의 사건이 이미 보여줬다.
학교 앞 어린이 공유자전거 방치, 아이 등하교길에 놓인 장애물
2024년 6월,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인도에 공유자전거와 킥보드가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
무게 16kg에서 18kg. 아이가 부딪히면 함께 쓰러진다.
(오마이뉴스) 스쿨존에 방치된 공유 자전거, 문제가 큽니다
여기서 발견한 놀라운 점이 있다.
반납 앱 지도에서 어린이보호구역이 반납 가능 구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스쿨존이 반납 금지 구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고를 하면 어떻게 되느냐.
전화번호는 없다. 채팅 상담뿐이다.
신고 후 하루가 지나도 수거되지 않은 자전거가 있었다.
같은 답변이 자동응답처럼 반복됐다.
2026년 2월 포항에서는, 아파트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던 13세 초등학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북일보) 포항 스쿨존 사고 원본 영상 유포
스쿨존은 아이들의 생활 동선 그 자체다.
그 동선 위에 무거운 공유자전거가 방치되어 있고, 반납 시스템이 이를 허용하고 있다.
지금 이 이야기들을 쭉 이어 붙여보면
여러 기사와 데이터를 모아서 하나로 연결해봤더니, 이런 그림이 나왔다.
하나. 어린이 공유자전거 이용 문턱은 낮아졌다. 가족권에 새싹따릉이. 1시간 1,000원. 앱에서 거점 지도 확인 가능.
둘. 그런데 조손가정이나 부모 부재 아동은 시스템상 이용이 불가능하다. 행정 인증 체계의 한계다.
셋. 만 13세 미만 자전거 사고는 5년간 3,792건. 헬멧 착용률 4.6%. 가족권 앱 안내만으로 현장 안전이 담보되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아직 없다.
넷. 따릉이 보험의 사망 보상금은 만 15세 미만 제외다. 가족권으로 이용하는 어린이의 보험 적용 범위는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다섯. 이 서비스의 기반인 따릉이 서버는 462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이 있다. 공단은 2년간 알고도 조치하지 않았다. 가족권으로 등록되는 자녀 정보도 같은 시스템에 저장된다.
여섯.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 공유자전거 반납이 허용되어 있다. 수거 체계는 업체별로 들쭉날쭉하다.
이 여섯 가지 사실 위에, “아이랑 같이 자전거 타자”는 한 문장이 놓여 있다.
어떤 판단을 할지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