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 정체를 아시나요
나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돈이 있다.
분명 크게 쓴 기억이 없는데, 월말이면 잔고가 생각보다 적다.
혹시 이런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은가.
이 이야기를 파고들기 시작한 건 하나의 숫자 때문이었다. 서울시가 2025년 4월, 전국 2,000명을 대상으로 구독서비스 이용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한 사람이 매달 구독료로 쓰는 평균 금액은 4만 530원이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48만 원.
(한국경제 – 구독서비스 이용자 절반 유료전환 안내 부족)
그런데 이 금액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조사 결과, 이용자의 56%가 무료 체험 후 자동으로 유료 전환된 경험이 있었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49%는 사전에 안내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 구독서비스 이용자 절반 유료전환 안내 부족)
모르는 사이에 결제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구조를 들여다보면서, 여러 자료를 조합해봤더니 흥미로운 흐름이 보였다.
가계부 앱 구독정리, 왜 혼자 힘으로는 잘 안 되는 걸까
구독서비스는 가입할 때 클릭 한 번이면 된다.
그런데 해지는 다르다.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가 넷플릭스, 쿠팡와우, 배민멤버십 등 13개 주요 구독서비스의 해지 화면을 직접 점검했다. 결과가 놀라웠다.
해지 단계에서 정말 해지하시겠어요 라는 질문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서비스가 92.3%였다. 해지 버튼을 찾기 어렵게 설계한 서비스는 84.6%. 유지하기 버튼에만 진한 색을 입히고, 해지하기는 모서리에 희미한 글씨로 놓은 서비스가 69.2%였다.
(뉴데일리 – 무료체험 뒤 자동결제 구독서비스 해지도 어려웠다)
이걸 다크패턴이라고 부른다. 소비자가 해지를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설계 방식이다.
실제로 이용자의 58.4%가 해지하려다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해지 메뉴를 못 찾겠다가 52.4%.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가 26.5%. 가입할 때와 해지 방법이 다르다가 17.1%.
2025년 2월에 개정 전자상거래법이 시행돼서 다크패턴에 과태료를 물릴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그 최대 금액이 500만 원이다. 연 매출 수백억 원인 사업자에게 500만 원이 어떤 의미인지는, 각자 생각해볼 부분이다.
(우먼스토리 – 100조 구독경제, 다크패턴 규제가 흔드는 비즈니스 모델)
구조적으로, 소비자 혼자 힘으로 모든 자동결제를 찾아내 해지하기가 쉽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등장한 가계부 앱, 근데 이 앱들은 어떻게 돈을 벌까
뱅크샐러드, 토스.
카드 연동하면 자동으로 구독 내역 정리해준다.
새는 돈을 잡아준다.
이런 말에 끌려서 가계부 앱을 깔아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편리하다. 카드, 은행 계좌를 연동하면 어디에 얼마가 빠져나가는지 한눈에 보인다. 잊고 있던 자동결제를 발견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후기도 많다. 뱅크샐러드는 지출 알림을 활용해 월 고정비 20%를 줄였다는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뱅크샐러드 – 구독서비스 종류별 할인받기)
여기까지만 보면 좋은 서비스다.
그런데 자료를 더 모아봤더니, 한 가지가 눈에 걸렸다.
이 앱들은 전부 무료다. 그러면 어디서 돈을 버는 걸까.
뱅크샐러드의 매출 구조를 보면, 전체 매출의 70에서 80%가 카드, 대출, 보험 등 금융상품 중개 수수료에서 나온다. 내 소비 데이터를 분석해서 이 카드가 맞다, 이 보험을 추천한다고 보여주고, 내가 가입하면 금융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바이라인네트워크 – IPO 도전하는 뱅크샐러드, 최대 과제는 연간 흑자)
토스는 더 직접적이었다.
2022년, 토스가 고객 80만 명의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판매한 사실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공개됐다. 이름, 휴대폰번호, 생년월일, 보험사 정보 등이 포함됐고, 1인당 약 6만 9,000원, 총 292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토스의 입장은 법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국민일보 – 토스, 80만명 개인정보 판매 매출 300억)
2024년 10월에는 금융감독원이 토스에 과징금 53억 7,400만 원과 과태료 6억 2,800만 원을 부과했다. 463만여 명의 개인신용정보를 동의 없이 사업성 분석에 이용한 혐의였다.
(한겨레 – 토스, 과징금 54억원 부과 개인정보 3천만건 부당이용)
뱅크샐러드도 2026년 2월, 내부통제 시스템 부실 운영 문제가 보도됐다.
(데일리시사 – 뱅크샐러드, 내 정보 다루면서 내부통제는 구멍)
이 자료들을 조합하면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내가 새는 돈을 잡겠다고 연동한 금융 데이터가, 플랫폼 입장에서는 금융상품을 팔고 광고 수익을 올리는 원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앱들을 안 쓰면 되는 건가, 그것도 단순하지 않더라
이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면 가계부 앱은 위험하니 쓰지 마세요가 된다.
그런데 사실관계를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앱 없이 직접 점검하려면 카드사 앱마다 따로 들어가서 정기결제를 찾아야 한다. 거기에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까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카드를 여러 장 쓰는 사람이라면 빠뜨리는 항목이 생기기 쉽다.
가계부 앱을 쓰면 여러 카드, 여러 은행 정보가 한 화면에 모이니까 빠뜨릴 확률이 줄어든다.
결국 이런 구도다.
앱을 쓰면 편의성은 올라가지만, 내 금융 데이터가 플랫폼에 축적된다.
앱을 안 쓰면 데이터 노출은 없지만, 직접 하나하나 찾아야 하는 수고가 든다.
자료를 조합해보니 보이는 것들
여기까지 모은 자료들을 한자리에 놓고 보니, 몇 가지가 정리됐다.
하나, 구독경제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국내 구독경제 시장은 2016년 약 26조 원에서 현재 100조 원 규모로 전망된다. 한국 성인의 94.8%가 하나 이상의 구독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대한상공회의소 – 최근 소비자 구독서비스 이용실태)
둘, 자동결제 해지는 의도적으로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
13개 주요 서비스 중 84.6%가 해지 방해 설계를 적용하고 있었다. 과태료 상한은 500만 원이다.
셋, 가계부 앱은 편의를 주지만 무료에는 이유가 있다.
토스는 고객 정보 판매로 292억 원을 벌었고, 이후 금감원에서 60억 원 규모의 제재를 받았다. 뱅크샐러드는 매출의 70에서 80%가 금융상품 중개 수수료다.
넷, 마이데이터 산업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62개 사업자 중 7곳 이상이 폐업했고, 3년 누적 손실은 3,241억 원이다. 살아남은 사업자들은 금융상품 중개와 데이터 활용 쪽으로 수익 모델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금융상품 추천이 더 공격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아주경제 – 수익화 어려운 마이데이터 기업들 줄줄이 사업 접어)
다섯, 절약 효과에는 조건이 있다.
월 구독료가 3만 원 미만인 사람이 30.5%로 가장 많았다. 월 5만 원에서 15만 원 절약이 가능하려면, 최소 월 5만 원 이상의 구독료를 내고 있어야 한다. 또한 가계부를 쓴다고 수입이 느는 것은 아니다.
10분 안에 할 수 있는 점검 체크리스트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앱을 쓰든 안 쓰든 우선 한 번은 확인해봐야 하는 것들이 정리됐다.
지금 쓰는 카드사 앱 열기
→ 정기결제 또는 자동결제 메뉴 찾기
→ 목록에서 이게 뭐지 싶은 항목이 있는지 확인
구글 플레이스토어 확인
→ 설정에서 결제 및 구독으로 들어가 정기결제 확인
애플 앱스토어 확인
→ 설정에서 내 이름을 누르고 구독 확인
가계부 앱을 쓸 경우 추가 확인
→ 개인정보 처리방침에서 제3자 제공 항목 확인
→ 내 데이터가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전달되는지 파악
해지 후 다음 달 확인
→ 해지했다고 생각한 서비스가 실제로 결제 중단됐는지, 다음 달 카드 명세서에서 재확인
이 글에 있는 모든 숫자와 사실은 해당 기사와 보고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자료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어떤 행동을 선택할지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몫이다.
다만, 여러 자료를 모아놓고 보니 하나는 분명했다.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의 정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