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도약계좌의 조용한 퇴장, 그리고 반복되는 패턴
“5년만 넣으면 5천만 원.”
이 한 문장에 마음이 움직여 가입한 사람이 242만 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중 44만 명 이상이 중도해지했다. 올해만 21만 명이 통장을 깼다.
그리고 2025년 12월, 청년도약계좌는 신규 가입을 종료했다.

출시 2년 6개월 만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리고 이 일은 왜 계속 반복될까. 지금부터 시간순으로, 하나씩 풀어보겠다.
시작은 대선이었다
2022년, 대선이 코앞이던 그해 2월. 윤석열 후보가 직접 발표했다. “청년희망적금을 확대하고, 청년도약계좌를 도입하겠다.” 원래 공약은 10년 후 1억 원이었다. 이후 5년 후 5천만 원으로 수정됐다.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5천만 원.” 청년들은 반응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청년에게 돈을 주는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던 시절이었다.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생겼다. 이 정책은 구조 개혁이 아니라 숫자 약속이었다. 주거비를 줄여주거나 고용 안정성을 높여주는 게 아니었다. “월 70만 원을 넣으면 5년 뒤 5천만 원”이라는, 계산기를 두드리면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수치. 선거 전략으로는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에서 가능한 약속인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306만 명이 가입할 겁니다” 처음부터 부풀렸다
2023년 6월 15일 출시. 금융위원회와 12개 은행이 협약을 체결했다. 금융위원회는 가입 대상 청년을 약 600만 명으로, 초기 가입자를 306만 명으로 예상했다. 기여금 예산으로 3,440억 원을 배정했다.
그런데 실제 집행액은 432억 원. 집행률 12.5%.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이유는 단순하다. 월 70만 원을 5년간 넣을 수 있는 청년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물가, 고주거비. 청년 중위소득을 고려하면 월 70만 원은 여유자금이 넉넉한 중상위 소득 청년에게나 가능한 금액이었다.
“최고금리 6% 받은 사람, 192만 명 중 0명”
이건 정말 놀라운 숫자다. KBS가 보도했다. 2025년 8월 말 기준, 청년도약계좌를 유지 중인 192만 명 가운데 최고금리 6%를 적용받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가입자들이 실제 적용받는 평균 금리는 4.26%였다.
왜 그럴까. 우대금리 조건이 이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급여이체 30개월 이상, 카드결제 30개월 이상, 자동이체, 마케팅 수신 동의, 주택청약 가입.
이걸 5년 동안 빠짐없이 전부 채워야 최고금리를 받을 수 있었다. 출시 전부터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어야 한다. 이 우대금리 조건의 본질은 뭘까.
급여이체. 카드결제. 마케팅동의.
이건 은행이 고객을 묶어두기 위해 쓰는 조건이다. 청년도약계좌 하나로 급여통장, 신용카드, 자동이체까지 한 은행에 집중시키는 것. 은행 입장에서 242만 명의 청년 고객을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KB국민은행은 실제로 청년도약계좌 가입자 대상 리브모바일 요금제까지 출시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정부 예산으로 은행의 고객 유치 비용을 대신 내준 셈이다.
돈이 없는 청년일수록 빨리 나갔다
가장 마음이 아픈 숫자가 여기 있다.
10만 원도 겨우 넣는 사람은 10명 중 4명이 포기했다. 해지 사유의 39%가 실업 또는 소득 감소, 33%가 긴급 자금 필요였다.
반면 월 70만 원을 꼬박 넣을 수 있는 사람은 버텼다. 당연히 이 사람들은 애초에 자산형성 지원이 덜 급한 사람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이런 구조가 됐다.
여유 있는 청년은 혜택을 다 누리고, 돈이 급한 청년은 해지하면서 불이익까지 받는 구조.
이게 청년을 위한 정책인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산은 어디로 갔을까
2024년 9월 기준, 기여금 예산 6,443억 원 중 실집행액은 2,570억 원. 집행률 39.9%.
쓰이지 않은 수천억 원은 어디에 있었을까.
서민금융진흥원이다. 청년도약계좌의 기여금을 관리하는 기관. 5년 만기 상품이니까 돈이 한꺼번에 지급되지 않고, 서민금융진흥원에 쌓여 있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을까.
서민금융진흥원의 2024년 수입은 약 3조 원. 역대 최고. 전년 대비 16.82% 증가. 청년도약계좌 입금액 등 이전수입이 3,000억 원 이상 늘어난 영향이라고 진흥원 스스로 설명했다.
같은 해, 서민금융진흥원장의 연봉은 3억 3,164만 원. 전년 대비 14% 인상. 일반 직원의 평균 보수 인상률은 1.6%. 원장이 14% 오를 때 직원은 1.6% 올랐다.
청년들이 해지하며 돌려받지 못한 기여금이 쌓인 곳에서, 경영평가 A등급과 성과상여금 확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건 처음이 아니다. 반복되는 간판 갈이
여기서 시선을 넓혀보자. 청년도약계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경제신문이 정리한 타임라인을 보면, 패턴이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청년희망적금이 2022년 2월에 출시됐다가 2023년 초에 신규 중단됐다. 수명 1년 1개월.
윤석열 정부에서는 청년도약계좌가 2023년 6월에 출시됐다가 2025년 12월에 종료됐다. 수명 2년 6개월.
이재명 정부에서는 청년미래적금이 2026년 6월에 출시 예정이다.
5년간 청년 금융정책의 평균 수명은 3년 반이다. 10년 이상 이어진 정책은 하나도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정부의 이름이 붙은 정책은 종료되고, 비슷한 내용을 새 이름으로 다시 시작한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도록 여야가 합의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매번 같은 일이 벌어진다.
영국의 ISA, 개인종합저축계좌는 1999년에 만들어져 25년 넘게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운영되고 있다. 한국은 왜 이게 안 될까. 대통령 단임 5년제에서, 장기 자산형성 정책의 성과는 다음 정부 때 나타난다. 다음 정부에겐 전임의 성과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지금,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가
2026년 6월, 청년미래적금이 출시 예정이다. 만기 3년, 월 50만 원 납입, 정부 매칭 최대 12%.
수치상으로는 좋아 보인다. 3년이면 도약계좌보다 짧고, 연환산 수익률은 16%대라는 시뮬레이션도 나온다. 청년도약계좌에서 갈아타기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뉴스토마토는 보도했다. 벌써부터 제2 청년도약계좌 전락 우려.
그리고 기획재정부는 공약의 최대 25% 매칭에 대해 예산 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공약과 실제 사이에 다시 간극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청년도약계좌를 유지하고 있다면
이득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미 2년 이상 유지 중이고, 월 40만 원 이상 넣고 있다면 3년까지는 버티는 게 낫다. 3년 이상 유지 후 해지하면 비과세 혜택이 유지되고 정부기여금 60%까지 받는다. 만기까지 갈 수 있다면 당연히 최선이다.
손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월 10만 원도 겨우 넣고 있다면, 이미 얻는 정부기여금이 미미하다. 중도해지 시 이자도 0.1에서 0.5% 수준으로 떨어진다. 차라리 필요한 곳에 돈을 쓰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
청년미래적금 갈아타기를 고민 중이라면
연소득 2,400만 원 이하로 지금 최대 기여금, 월 3만 3천 원을 받고 있다면 도약계좌를 유지하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갈아타기 전에 반드시 본인 소득 구간별 기여금 차이를 계산해야 한다. 성급하게 움직이면 기존 혜택을 잃고 새 혜택도 못 받는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아직 아무것도 가입 안 했다면
청년미래적금 출시, 2026년 6월 예정까지 기다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하나만 기억해두자. 이 정책도 정권이 바뀌면 또 바뀔 수 있다. 3년 만기라서 이번엔 만기까지 갈 가능성이 높지만,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가입 전 최종 확정 조건을 꼭 확인하자.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일
지금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기존 청년도약계좌 255만 가입자 중 이미 50만 명이 이탈했다. 이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남은 204만 명 중 상당수도 납입액이 적어 만기 시 실제 수령액은 5천만 원과 거리가 멀 것이다.
둘째, 청년미래적금의 정부 매칭 비율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공약은 25%였으나, 기재부가 예산 부담으로 반대하고 있어 12%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공약과 현실의 차이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셋째, 이 모든 과정에서 은행은 이미 이익을 취했다. 242만 명의 청년 고객 데이터, 급여이체와 카드결제 집중, 마케팅동의. 정책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은행은 고객을 확보했다. 다음 정책에서도 같은 구조가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