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수소가 갑자기 뜬 타이밍이 이상하다
핑크수소라는 단어가 한국 에너지 업계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은 2024년 하반기부터였다. 그 전까지 수소 하면 그린수소가 대세였고, 원전은 탈원전 정책 아래 찬밥 신세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원전이 부활했고, 뒤이어 핑크수소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취임 전부터 한수원을 불러 핑크수소 R&D를 점검했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핑크수소가 진짜 기술적으로 준비돼서 등장한 건지, 아니면 원전을 계속 돌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새 명분이 필요했던 건지.
한수원은 원전을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원전이 줄면 존재 이유가 흔들린다. 핑크수소는 기존 원전의 전기를 계속 쓸 이유를 만들어준다. 한수원이 이 사업에 적극적인 건 당연하다. 그게 나쁜 게 아니라, 그 동기를 알고 들어야 판단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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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과 포스코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유
삼성물산은 국회 수소경제포럼에서 울진과 영광 원전을 활용한 핑크수소 생산단지를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울진 2GW 원전으로 연간 30만 톤 핑크수소를 만들어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공급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에 연간 320만 톤의 수소가 필요하다. 그린수소로 조달하면 철강 원가가 두 배 이상 뛴다. 포스코 입장에서 원전 전기로 만든 값싼 수소를 확보하는 건 생존의 문제다.
삼성물산은 EPC 역량을 앞세워 수소 플랜트 시공 수주를 노린다. 총 80억 달러 규모 오만 프로젝트에도 참여 중이다. 한수원은 원전 수요처를 확보하고, 포스코는 탄소세 폭탄을 피하며, 삼성물산은 수조 원짜리 건설 사업을 따낸다. 세 주체 모두 핑크수소라는 하나의 단어로 각자의 이익을 포장하고 있었다.
4333억 국책사업 부지에 상수원보호구역이 겹친다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는 총 사업비 4333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2030년까지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일원 158만㎡에 조성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2026년 5월, 인허가 과정에서 전체 면적의 28.3%인 41만㎡가 남대천 상수원보호구역에 포함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는 점이다. 수도법상 상수원보호구역과 산업단지 사이에 유하거리(물이 흘러가는 거리) 기준을 지켜야 하는데, 이 기본적인 법적 요건이 사전에 걸러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검토 단계에서 이걸 모를 수 없었다. 울진군은 이 사업으로 연 3만8000명 고용과 17조 원의 경제 효과를 홍보했다. 지역소멸 위기를 겪는 군 입장에서 이 사업은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였고, 그 절박함이 법적 리스크를 덮어버린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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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가 핑크수소를 청정 인정하지 않으면 무엇이 무너지나
EU는 원자력으로 만든 수소를 저탄소 수소로 인정하는 결정을 2028년까지 유예했다. 프랑스와 폴란드는 찬성, 독일과 덴마크는 반대 중이다. 아직 국제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이 핑크수소를 청정수소로 자체 인정하고 포스코가 이걸로 철강을 만들어도, EU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감면 혜택을 못 받는다. 포스코의 EU 수출은 전체의 13.4%다. 향후 10년간 CBAM 비용만 3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핵심은 이거다. 한국 정부는 추가성(additionality) 원칙 적용을 유예하고 있다. 기존 원전 전기를 수소 생산에 전용하면, 그 빠진 전력을 화석연료가 메우게 되고, 오히려 온실가스가 연간 450만 톤 추가 배출된다는 에너지경제연구원 시뮬레이션이 이미 나왔다.
그러니까 핑크수소를 만든다고 탄소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종이 위에서만 깨끗한 수소가 될 수 있다.
핑크수소 뒤에 있는 진짜 승부는 원전 PPA다
포스코홀딩스는 프랑스 EDF와 아르셀로미탈이 체결한 CAPN(원자력 발전량 배분 계약)을 한국에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원전 전기를 10년 이상 장기계약으로 싸게 받겠다는 뜻이다.
현재 한전은 전력판매를 독점한다. 원전 전기를 특정 기업에 직접 팔 수 없다. 포스코가 원전 PPA를 따내면 한전을 거치지 않고 값싼 전기를 쓰게 된다. 이건 특혜 논란으로 직결된다. 다른 제조업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핑크수소라는 이름은 사실 이 원전 PPA 논쟁의 우회로일 수 있다. 수소를 만든다는 명분을 세우면, 원전 전기를 특정 산업에 배분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수소환원제철이라는 국가적 과제 앞에서 특혜라는 비판을 방어할 수 있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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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에너빌리티가 SMR에 8000억을 거는 이유
두산에너빌리티는 2026년 창원 본사에 SMR 공장을 짓는 데 약 8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연간 20기 생산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SMR은 소형모듈원전이다. 기존 대형 원전보다 입지 선정이 쉽고, 데이터센터나 수소 생산 같은 특수 목적에 전용할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4세대 고온가스로를 통해 만든 초고온 열로 수소를 생산하면 경제성이 훨씬 올라간다고 본다.
흥미로운 건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적한 추가성 문제의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점이다. 기존 원전 전기를 빼서 수소를 만들면 청정 인정이 안 되지만, 신규 SMR을 전용으로 지으면 추가성 기준을 충족한다. 두산에너빌리티의 SMR 투자와 핑크수소 정책은 표면적으로 별개 사업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의 퍼즐이다.
결론 대신 남은 의심들
사실로 확인된 것. 한국 정부는 추가성 원칙 적용을 유예 중이고, EU는 핑크수소 청정 인정을 2028년까지 보류했다. 포스코는 연간 320만 톤의 수소가 필요하며 그린수소로는 원가 경쟁이 안 된다. 울진 수소국가산단은 상수원보호구역 문제로 차질을 빚고 있다.
가능성 높은 추론. 핑크수소 정책은 원전 유지를 위한 한수원의 존재 이유 만들기와, 포스코의 저가 전력 확보, 삼성물산의 대규모 건설 수주라는 세 이익이 결합된 결과물이 아닌가?
단순 의심. 울진 상수원보호구역 문제를 사전에 아무도 몰랐다는 게 가능한가? 17조 원 경제효과를 내세워 주민 동의를 먼저 받은 뒤 법적 결격을 나중에 공개한 건 아닌가?
Q&A
Q1. 핑크수소가 그린수소보다 나은 점이 뭔가?
그린수소는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만드는데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8%라 가격이 비싸다. 핑크수소는 원전 전기를 쓰니까 24시간 안정적으로 생산 가능하고 단가가 낮다. 다만 EU가 아직 청정으로 인정 안 해줘서 수출에는 변수가 있다.
Q2. 핑크수소를 만들면 탄소 배출이 정말 줄어드나?
신규 원전으로 만들면 줄어든다. 하지만 기존 원전 전기를 빼서 만들면 그 빈자리를 가스나 석탄이 메워야 해서 오히려 연간 450만 톤이 추가 배출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Q3. 울진 수소국가산단은 무산되는 건가?
상수원보호구역 위반 문제가 드러났지만 아직 최종 결정은 안 났다. 법적으로 해결하려면 보호구역 해제나 부지 변경이 필요하고, 둘 다 쉽지 않다.
Q4. 포스코는 왜 핑크수소에 매달리나?
EU CBAM 때문이다. 탄소 많이 배출하면 수출할 때 벌금을 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린수소 쓰면 철강 가격이 두 배 이상 뛴다. 원전 수소가 유일하게 가격 경쟁력이 있는 선택지다.
Q5. 두산에너빌리티의 SMR과 핑크수소는 무슨 관계인가?
SMR을 새로 지어서 거기 전기로 수소를 만들면 추가성 원칙을 충족한다. EU도 인정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두산에너빌리티가 8000억 원 투자하는 배경에 이 수요 기대가 깔려있다.
참고 자료
- 김재경의 마켓 나우: 원전 수소에 신중한 EU, 속도 내는 한국 – 중앙일보 — 추가성 원칙과 한국 정책의 허점을 분석한 칼럼
- 정책 불확실성에 멈춰 선 민간투자, 수소 강국을 위한 골든타임 – 월간수소경제 — 삼성물산, 포스코, 현대차의 수소 투자 전략 전문
- 40조 원 승부수,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사활 – 대구일보 — 수소환원제철에 필요한 수소량과 원전 연계 논의
-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상수원보호구역 변수 – 대구신문 — 4333억 국책사업의 법적 결격 문제 보도
- 유럽 핵수소 저탄소 인정 2028년 유예, 산업계 반발 – 투데이에너지 — EU의 핑크수소 분류 유예 경위와 각국 입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