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등급제 비율 바뀌고 나서 벌어진 일들
고교 내신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었다.
2025년 고1부터 적용됐고, 1등급 비율이 기존 4%에서 10%로 늘었다.
숫자만 보면 1등급 받기 쉬워진 것 같았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부산시교육청이 88개 고교 1만 4,331명의 1학년 전체 성적을 분석했다. 1~2학기 누적 기준 전 과목 평균 1.00을 받은 학생은 전체의 1.30%였다. 학교당 평균 2.12명. 전교에서 딱 두 명이다.
경기진협 분석도 비슷했다. 1만 6,110명 중 12개 과목 전부 1등급을 받은 학생은 1.20%에 그쳤다. 1학기 1.74%에서 2학기까지 합치니까 오히려 줄었다.
“5등급제면 1등급 넘쳐나는 거 아니었어?”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돌아다닌 반응이었다.
동점자 속출, 원점수 전쟁이 시작됐다
종로학원이 전국 1,781개 고교 1학년 성적을 분석한 결과, 주요 5개 과목 평균 점수가 전년 대비 3점 올랐다. A등급(90점 이상) 비율도 일반고 기준 20.5%에서 23.7%로 뛰었다.
시험이 쉬워진 거다.
학교들이 5등급제에 맞춰 난이도를 낮췄다. 결과적으로 1등급 안에 들어오는 학생이 많아졌고, 같은 등급 안에서 동점자가 쏟아졌다. 등급만으론 누가 더 잘했는지 구분이 안 된다.
대학은 원점수, 평균, 표준편차까지 다 본다. 등급이 같아도 원점수 1점 차이로 갈린다. “이제 등급 싸움이 아니라 원점수 싸움”이라는 말이 입시판에 퍼진 이유다.
왜 1등급 받아도 인서울이 불안한 건가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가 내놓은 분석이 충격이었다. A등급을 받은 학생 중 절반 이상이 1등급(상위 10%)을 받지 못했다. A등급이어도 1등급이 아닌 학생이 더 많다는 뜻이다.
더 무서운 숫자가 있다. 전국 1등급 학생 수가 인서울 대학 모집인원보다 많다. 1등급을 받아도 원하는 대학에 못 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기존 9등급제에서는 1.3~4등급이면 의치약대 지원이 가능했었다. 5등급제에서는 1등급 초반대가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민다. “1등급 받았는데 왜 이런 대학밖에 못 가냐”는 학부모 하소연이 나오는 배경이다.
강남에서 자퇴 상담이 터진 진짜 사정
서울 강남의 한 여고에 입학한 학생이 중간고사 후 자퇴를 고심했다는 이야기가 중앙일보에 보도됐다. 영어에서 실수 몇 개 했는데, 기말을 잘 봐도 1등급이 안 나온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강남, 목동 같은 교육 특구에서는 중간고사 이후 전학이나 자퇴를 고려하는 고1이 늘었었다. 한 학생은 “국어, 영어, 사회에서 2등급 맞았다. 강북 쪽 일반고로 전학 갈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외고에 다니는 학생은 “전공어 빼고 전부 3등급 예상이라 일반고 전학을 고민한다”고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아이들 부담을 줄여준다고 5등급제로 바꿨다는데, 이게 더 독이 되는 분위기”라는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오자 공감이 쏟아졌다.
다만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실제 고1 자퇴율은 오히려 전년 대비 감소했었다. 불안은 커졌지만, 자퇴까지 실행하는 비율은 높지 않았다는 뜻이다.
일반고가 자사고를 역전한 반전
서울시교육청 자료에서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전 과목 1등급 비율이 일반고 2.09%, 자사고 1.38%, 특목고 0.44%였다. 일반고가 1위다.
“자사고 가면 내신 유리하다”는 통념이 깨졌다.
이유는 구조적이었다. 자사고와 특목고는 우수한 학생이 몰려 있어서 과목마다 1등급이 돌아가며 나뉘는 “성적 나눠 먹기” 현상이 발생했다. 한 학생이 모든 과목을 독식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반면 일반고는 최상위권과 중하위권 학력 격차가 커서, 상위 소수 학생이 전 과목 1등급을 안정적으로 가져갔다. “내신 따려면 일반고가 낫다”는 입시 전략이 현실이 된 셈이다.
시간표 하나에 720만 원, 사교육이 파고드는 틈새
고교학점제가 맞물리면서 문제가 커졌다. 학생이 직접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데, 원하는 과목이 학교에 개설되지 않으면 다른 학교까지 가야 한다.
“내가 관심 있는 인공지능수학, 응용통계가 우리 학교엔 안 열릴 것 같다. 다른 학교로 택시 타고 통학할 판”이라는 학생의 호소가 나왔다.
대치동 입시학원에서는 선택과목 트랙 설계 상담을 매달 1~2회 진행하며 학생을 모집했다. 1회 30만 원, 연간 720만 원이다. “학교는 진로지도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 학원을 알아보고 있다”는 학부모의 말이 씁쓸하다.
이 제도가 엇박자를 낸 출발점
고교학점제는 원래 수능과 상대평가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됐다. 2018년 설계에 참여한 김동춘 전 대전이문고 교장이 직접 밝혔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공통과목에만 석차를 표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내신 부풀리기” 우려가 나오면서 전 과목에 상대평가 등급까지 병기하는 쪽으로 방침이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고교학점제의 “자유로운 과목 선택”이라는 취지와, 상대평가의 “등급 경쟁”이라는 구조가 정면 충돌했다. “수능과 연계된 과목 위주로 수업 개설이 집중되면서 진로 중심 선택은 무력화되고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핵심이다.
타임라인으로 보면 더 선명하다
2018년, 고교학점제 설계 시작. 수능, 상대평가 단계적 폐지 전제였다.
2023년 10월, 교육부가 내신 5등급제 확정 발표. 1등급 비율 4%에서 10%로 확대.
2023년 12월, 2028 대입 개편안 확정. 정시에서도 내신 반영하겠다는 대학 등장.
2025년 3월, 5등급제 첫 적용 학년 입학.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2025년 5~6월, 중간고사 후 강남 등 교육 특구에서 자퇴, 전학 상담 급증 보도.
2025년 10월, 종로학원 성적 분석 발표. 평균 점수 3점 상승, 동점자 속출 확인.
2026년 2월, 부산시교육청 1~2학기 누적 분석 발표. 전 과목 1등급 유지 학생 1.30%.
2026년 3월, 경기진협 배치표 공개. 인서울 합격선 내신 1.583등급 제시.
내 사설, 솔직하게
5등급제 비율을 바꾼 의도는 이해한다. 4%짜리 1등급은 너무 가혹했다. 그런데 10%로 넓혀놓고, 수능도 그대로 두고, 정시에 내신까지 반영하겠다고 하면 학생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등급은 느슨해졌는데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이건 모순이다.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구조다. 5등급제라 더 심해졌다”는 한 학부모의 글이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맞는 말이다. 3년간 중간, 기말 12번 시험에서 한 번만 삐끗해도 나락이다.
태어나는 아이들은 계속 줄고 있는데, 남은 아이들끼리 더 치열하게 경쟁시키는 이 구조가 과연 맞는 건지 되묻고 싶다. 제도를 만든 사람들은 자기 아이도 이 제도 안에 넣을 수 있는 건지.
결국 5등급제가 문제가 아니다. 5등급제와 맞지 않는 대입 구조가 문제다. 옷은 바꿔 입혔는데 신발은 그대로인 꼴이다. 아이들이 불편한 건 당연하다.
(고1 3월 모의고사 등급컷 불안 해소하는 법, 입시 변화 흐름 한 편 정리 꿀팁에서 5등급제 전환 초기 분위기를 정리한 바 있다.)
Q&A
Q1. 5등급제에서 1등급 비율이 10%면 예전보다 1등급 받기 쉬운 거 아닌가?
과목 하나만 보면 맞다. 그런데 전 과목에서 동시에 상위 10% 안에 드는 “교집합”은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과목이 늘어날수록 1등급 유지는 더 어려워진다.
Q2. 일반고와 자사고 중 내신 따기에 유리한 쪽은?
2025년 서울 기준 전 과목 1등급 비율은 일반고 2.09%, 자사고 1.38%였다. 자사고는 우수 학생이 밀집해 과목마다 1등급이 돌아가며 나뉘기 때문에 전 과목 독식이 어렵다.
Q3. 동점자가 많으면 대학은 어떻게 뽑나?
등급 외에 원점수, 학교 평균, 표준편차를 보조 지표로 활용한다. 학생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같은 정성 평가도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Q4. 5등급제 때문에 자퇴하는 학생이 정말 늘었나?
불안감은 커졌지만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학기 고1 자퇴율은 전년 대비 오히려 감소했다.
Q5. 2028 대입에서 내신 몇 등급이면 인서울이 가능한가?
경기진협 분석 기준 인서울 합격선은 내신 평균 1.583등급(누적비 12.01%)으로 제시됐다. 한두 과목 2등급을 받아도 최상위 대학 지원은 가능한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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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내신 5등급제 도입 1년, 1등급 문턱 낮아졌지만 유지는 바늘구멍 (중앙일보) → 부산시교육청 실제 데이터 원문
- 다 1등급, 5등급제에 동점자 속출 내신 변별력 어디로 (매일경제) → 종로학원 성적 분석 원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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