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7일, 박진성 시인의 성희롱을 폭로했던 김현진 씨가 28세의 나이로 숨졌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고인의 법률대리인이었던 이은의 변호사는 SNS를 통해 “짧았지만 빛나고 뜨거웠던 98년생 김현진님의 작별을 전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그게 다가 아니다. 이 한 줄의 부고 뒤에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있다. 17세 여고생이 시를 배우다 성희롱을 당하고, 용기를 내어 폭로했더니 오히려 허위 미투라는 낙인이 찍히고, 주민등록증까지 온라인에 뿌려지고,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법정에서 7년을 싸워야 했던 이야기다.
그 전후 맥락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했다.
2015년, 열일곱 여고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시작은 인터넷 시 강습이었다. 2015년 9월, 박진성 씨는 온라인으로 시를 가르치다 당시 17세였던 김현진 씨를 알게 됐다. 그리고 이듬해 10월까지 “애인 안 받아주면 자살할 거”, “내가 성폭행해도 안 버린다고 약속해” 같은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애인하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시를 배우고 싶었던 10대 학생에게 30대 시인이 한 행동이었다. 이건 단순한 개인 간 갈등이 아니다.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구조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2016년, 왜 폭로를 결심했나
2016년 10월, 트위터에서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됐다. 한국판 미투의 전초였다. 김현진 씨도 여기에 참여해 익명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한겨레)
처음에는 가해자 이름이 특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고발 대상이라고 확신한 박 씨가 먼저 접촉해왔다. 위협을 느낀 김현진 씨가 가해자를 밝혔고, 이후 다른 피해자들의 폭로도 줄줄이 터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투 운동의 전형적인 흐름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여기서부터 방향이 완전히 뒤틀린다.
어떻게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집혔나
박 씨는 처음에 사과문을 올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글이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태도가 바뀌었다. SNS에 “무고는 중대 범죄”, “허위로 누군가를 성폭력범으로 만드는 일이 없길 바란다”는 글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한겨레)
2019년 3월에는 김현진 씨의 주민등록증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실명까지 공개했다. “변호사 자문을 받았다”는 이유를 댔다. 같은 해 김현진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걸었다.
“허위 미투를 당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생각보다 넓게 퍼졌다.
누가 박진성의 편에 섰나
경향신문 위근우 칼럼니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박 씨는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뒤 ‘성범죄 무고의 아이콘’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JTBC에서 400만 원, YTN에서 1800만 원 지급 판결이 나온 건 반론권 미보장이라는 보도의 절차적 문제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마치 성희롱 의혹 자체가 거짓인 것처럼 소비됐다. (경향신문)
2020년 박 씨가 자살 암시 글을 올리고 잠적했을 때, 전 법무부 장관 조국은 페이스북에 “관련 언론사 정정보도문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성희롱 의혹을 허위보도로 치부하는 글을 올렸다. 평론가 허지웅은 SBS 라디오에서 “무고로 인한 누명을 벗은 뒤에도 끝을 알 수 없는 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던 시인”이라는 감성적 멘트를 남겼다. (경향신문)
작가 박가분은 트위터에서 “박진성 시인은 대표적 성범죄 무고 사례로 교육되고 있다”고 단언했다. 유튜브 콘텐츠에서도 이 사례는 “허위 미투의 증거”처럼 활용됐다.
이 시기 진짜 피해자인 김현진 씨는 ‘무고녀’라는 라벨이 붙은 채 악성 댓글과 싸우고 있었다.
법원은 뭐라고 했나
2021년 5월, 박 씨가 김현진 씨를 상대로 건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박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성희롱 사실이 사실과 부합한다”고 판단했고, 오히려 박 씨가 김현진 씨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한겨레)
2023년 11월, 2심에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1년 8개월 실형이 선고됐다. 법정구속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에 대한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을 막으려는 행동을 한 적도 없고 고통에 공감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조선일보)
2024년 2월, 대법원이 이 판결을 확정했다. 노태악 대법관이 주심이었다. 박 씨는 감옥에 갔다. (연합뉴스TV)
7년 걸렸다. 17세 때 당한 피해를 폭로한 소녀가 법적으로 인정받기까지.
그 뒤 응원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경향신문 위근우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썼다. “박진성의 거짓말에 놀아났거나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를 무고의 아이콘으로 활용하고선 침묵 중인 이들.” 그는 “이 침묵이 경멸스럽다”고 했다. (경향신문)
실형이 확정된 뒤, 박 씨를 지지하던 목소리는 사라졌다. 마치 그런 사람이 없었고, 그에 대한 응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사이 김현진 씨는 여전히 후유증과 싸우고 있었다.
정치권과 여성단체는 뭐라고 했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올렸다. “고 김현진님은 폭로 이후 7년 가까이 가해자와, 그리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회와 싸워야 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싸우기를 택했던 김현진님, 그리고 끝까지 연대했던 여성들이 이룬 정의였다”며 “이제야 일상을 되찾은 줄 알았는데, 김현진님이 오늘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한겨레)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너무나 애통하다”고 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박진성씨의 거짓 부고에 늘 긴급하게 응답했던 이들도 일말의 양심이 남았다면 최소한 고인의 명복을 비시길”이라고 적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성폭력이라는 부정의에 뜨겁게 저항했던 김현진님을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지금 이 상황에서 읽히는 것들
여기까지가 보도된 사실의 정리다. 10년의 타임라인을 한 줄로 압축하면 이렇다.
17세에 피해를 당했다. 19세에 폭로했다. 가해자는 허위 미투라고 반격했다. 유명인들이 가해자 편에 섰다. 피해자는 무고녀라 불렸다. 7년 뒤 법원이 가해자에게 실형을 확정했다. 그리고 28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패턴이 보인다. 성폭력 피해자가 폭로를 한 뒤, 가해자가 “허위 미투”를 주장하고, 그 주장이 일정한 사회적 지지를 얻으면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돌아가는 구조다.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까지 수년이 걸리고, 그 시간 동안 피해자는 ‘무고녀’라는 프레임 안에서 버텨야 한다.
이은의 변호사는 이렇게 썼다. “그가 낸 용기에 아주 많은 여성들이 함께 손잡고 직진해 사필귀정을 일궜다.”
이 사건의 결론은 법원이 내렸다. 나머지 판단은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몫이다.
Q&A
Q1. 박진성 시인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2024년 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8개월이 확정돼 수감됐습니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였으며, 2심에서 법정구속된 상태로 형이 확정됐습니다.
Q2. 김현진 씨의 사인은 공개됐나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법률대리인이었던 이은의 변호사가 SNS를 통해 사망 사실만 알렸고, 구체적인 사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Q3. 박진성 시인의 성희롱 혐의는 처벌받지 않았나요?
성희롱 자체에 대한 형사 처벌은 공소시효가 지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처벌을 받은 건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한 행위에 대한 것입니다. 다만 민사 재판에서 법원은 “성희롱 사실이 부합한다”고 판단했습니다.
Q4. 조국, 허지웅 등 유명인의 발언은 이후 정정됐나요?
경향신문 보도 기준으로 별도의 정정이나 사과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박진성 씨의 실형 확정 이후 해당 발언들에 대한 공개적 해명은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Q5. 2차 가해란 정확히 어떤 행위를 말하나요?
이 사건에서의 2차 가해는 피해자의 신상 공개(주민등록증 게시), ‘무고녀’로 몰기, 악성 댓글,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역고소하는 행위 등을 말합니다. 법원이 유죄를 인정한 것은 이러한 2차 가해 행위에 해당하는 명예훼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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