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경마장 이전은 왜 갑자기 터졌을까?
2026년 1월 29일. 정부가 한 줄 발표를 했다.
“과천 경마장 부지에 9,800가구를 짓겠다.”
축구장 160개 크기, 115만㎡.
37년간 같은 자리에 있던 렛츠런파크 서울이 통째로 들려나가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이게 갑자기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배경을 보면 꽤 오래된 떡밥이다.
2025년 서울 아파트값은 8.71% 올랐다. 19년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홈더부, 2026.1.2) 2026년엔 ‘초공급 부족’이란 말까지 나왔다. (땅집고, 2026.1.5) 과천은 그중에서도 경기도 집값 상승률 1위(2025년 1~3분기 기준 16.9%)를 찍었다. (노컷뉴스, 2026.2.5)
정부 입장에서 과천 경마장은 너무 매력적인 땅이었던 거다.
서울 바로 옆, 수도권 한복판, 115만㎡ 어마어마한 빈땅. 집 지으라고 있는 것 같은 자리.
이 자리에 경마장은 어떻게 오게 됐을까?
과천에 경마장이 생긴 건 1989년이다.
원래는 서울 뚝섬에 있었다. 지금의 서울숲 자리. (뉴스인, 2009.9.18)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승마경기장이 필요했고, 과천에 시설을 지었다. 올림픽이 끝나자 “이 좋은 시설 놔둘 수 없지” 하면서 경마장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주간조선, 2026.2.8)
뚝섬 36년, 과천 37년. 경마장은 늘 이렇게 도시가 커지면 밀려났다.
뚝섬 경마장이 떠난 자리가 지금 서울숲이다. 그러니까 과천 경마장이 빠지면 그 자리에 뭐가 들어올지, 벌써 상상이 되는 거다.
과천시는 왜 결사반대를 외칠까?
돈 때문이다. 솔직하고 단순하다.
과천시는 마사회에서 연간 약 508억 원의 세금을 받는다. 시 전체 예산 4,917억 원의 10%가 넘는다. (조선일보, 2026.1.31) 경마장이 나가면 이 돈이 증발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신계용 과천시장의 태도 변화다.
4년 전인 2022년, 그는 “경마장 세수가 250억대로 떨어졌고, 3기 신도시에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옆에 경마장을 존치시킬 수 없다”며 이전에 찬성했다. 윤석열 정부와 활용방안을 논의하겠다고까지 했다. (MBC뉴스, 2026.1.30)
그런데 2026년, 세수가 508억으로 다시 뛰자 “분명하게 반대한다”로 돌아섰다.
연 250억일 땐 보내주고 싶었고, 연 508억이 되니 못 보낸다는 이야기다.
1조 2천억이 증발한다고? 마사회는 왜 패닉에 빠졌나
마사회 내부 보고서가 유출되면서 숫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과천 경마장이 문을 닫으면 연매출 1조 2,000억 원이 사라진다. 기존 이용객의 67%가 경마를 그만둘 거라는 분석이다. 과천은 전국 3개 경마장 중 유일한 흑자 사업장이고, 경주 매출 기준 전체의 60%를 먹여 살린다. (뉴스핌, 2026.2.2)
돈 말고도 문제가 있다. 과천에 상주하는 경주마만 1,400마리. 서울 권역 전체로 치면 2,200마리다. 이 말들이 갈 곳이 없다. 부산과 제주 경마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새 경마장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은 최소 1조 원. 토지 매입비는 별도다.
여기에 결정적인 선례가 하나 있다. 경북 영천경마공원은 부지 선정(2009년)부터 준공(2026년)까지 17년이 걸렸다. (데일리안, 2026.3.4)
정부가 말하는 2030년 착공? 마사회 노조는 “최소 12~15년은 걸린다. 탁상행정”이라고 받아쳤다.
연 500억을 잡아라, 지자체들은 왜 줄을 섰나
과천이 잃을 돈을 다른 도시들은 갖고 싶다. 당연하다.
화성, 양주, 시흥, 안산, 파주, 포천, 동두천, 연천, 의정부, 고양.
경기도 내 10개 넘는 지자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파이낸셜뉴스, 2026.3.11)
계산은 간단하다. 연 500억 세수에 3,000명 고용, 거기에 연간 수백만 명 유동인구. 이게 한 번에 떨어지는 거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화성 화옹지구. 마사회가 이미 90만㎡에 1,600억을 투입해 경주마 조련단지를 짓고 있다. (조선일보, 2026.1.31)
양주 광석지구는 ‘속도’를 무기로 내밀었다. 22년간 개발에 묶여 있었지만 LH 토지보상이 이미 끝나서, 결정만 나면 바로 공사에 들어갈 수 있다. (중부일보, 2026.3.15)
경기북부 5개 시군(의정부, 양주, 포천, 동두천, 연천)은 아예 공동선언까지 했다.
정부가 후보지를 안 밝히는 이유도 돈이다. 발표하는 순간 투기 수요가 몰리고, 지역 간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
부동산 업계는 이미 경마장 확정 지역을 개발 대박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피노미, 2026.2.23)
과천 안에서도 찬반이 갈린다고?
밖에서 보면 과천 전체가 반대하는 것 같지만, 안쪽 사정은 다르다.
과천 도심(원도심) 주민들은 반대다. 집값 하락이 두렵고, 교통 지옥이 더 심해질까 걱정한다.
반면 경마장 바로 옆 과천동과 주암동 주민들은 환영한다. “경마장은 시민 쉼터가 아니다. 40년간 교통정체, 소음, 쓰레기 무단투기, 음주와 흡연에 시달렸다”고 호소했다. (노컷뉴스, 2026.2.5)
경마장 인근에서 취재진을 만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앓던 이가 빠졌어요. 경마장 옆이라는 거는 좋은 의미는 아니잖아요. 도박장인데 결국은.”
같은 과천인데, 원도심은 자산 가치를 지키고 싶고, 외곽은 기피시설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다.
마사회는 원래 깨끗한 조직이었나?
이 대목에서 마사회의 과거를 안 볼 수가 없다.
2019년 11월,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소속 문중원 기수가 3장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승부조작 주문, 조교사 개업심사 비리, 마방 임대 과정의 부조리가 적혀 있었다. (경향신문, 2025.4.24)
장례는 102일이 지나서야 치러졌다. (KBS, 2020.3.9)
이후 시민대책위가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고, 마사회의 불법과 부패행위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경향신문, 2020.2.19) 6년 만인 2025년 4월, 관련 비리에 유죄가 확정됐다.
그리고 역대 회장들. 낙하산 인사, 측근 채용, 직원 폭행, 고액 연봉 논란이 정권마다 반복됐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역대 회장마다 CEO리스크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이프타임스, 2024.8.8)
마사회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와, 이참에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엇갈리는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제주에선 무슨 일이 터진 건가?
과천 이전 논란이 한창인 와중에,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금지약물 스캔들이 터졌다.
경주마에서 근육 성장 촉진 스테로이드인 난드롤론이 잇따라 검출됐다. 2월 27일 첫 검출, 3월 6일 두 번째, 3월 14일 세 번째. (노컷뉴스, 2026.3.24)
첫 양성 반응은 3월 5일에 확인됐다. 그런데 다음 날 경주를 그대로 강행했다. 세 번째까지 터지고 나서야, 2주가 지나서야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더 황당한 건 이거다. 약물이 검출된 말이 1위, 2위, 3위를 한 경주에서, 상금은 회수됐지만 경기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베팅한 고객에 대한 보상도 없다. 해당 경주 3건의 베팅액만 추정 45억에서 60억 원. 마사회가 수익을 가져간 셈이다. (노컷뉴스, 2026.3.31)
약물 투여 추정 인물은 몽골 국적 민간 조련사. 가족 간병을 이유로 이미 출국했다.
경마장 내부 경주마는 마사회가 직접 관리하지만, 제주마는 외부 목장에 맡겨 관리한다. 관리 사각지대가 그대로 노출된 거다.
3,000명의 노동자는 어디로 가나?
2월 25일,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경마 노동자들이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집단 삭발까지 했다. (KBS, 2026.2.26)
과천 경마장에 근무하는 약 3,000명. 대부분 과천과 안양 등 인근에 산다. 이전되면 직장이 사라지거나,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따라가야 한다.
마사회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경마장은 배팅만 하는 장소가 아니다. 말 관리를 위한 공간, 그에 따른 고용 인원, 마주들의 접근성. 한 시설을 옮길 때 고려해야 할 게 상상 이상으로 많다.”
과천시민비상대책위원회도 결성됐다. 마사회 노조, 시민단체, 과천시가 한몸이 돼서 반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심지어 마사회 회장까지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한국농정신문, 2026.3.1)
지금 이 상황,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까?
사실관계를 모아서 정리하면 이런 그림이 나온다.
정부는 수도권 집값을 잡아야 하고, 과천 115만㎡는 포기하기 힘든 카드다. 하지만 마사회 매출 1.2조, 과천 세수 500억, 3,000명 고용, 2,200마리 경주마, 최소 17년 걸리는 이전 현실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경기도 지자체들의 유치전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지만, 후보지가 확정되는 순간 부동산 투기가 몰리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정부가 입을 닫고 있는 이유도 이것이다.
제주 약물 스캔들은 마사회의 관리 시스템 자체에 구멍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게 “마사회를 이대로 둬도 되나”라는 여론에 불을 붙일 수도 있고, 반대로 “이런 상황에서 경마장까지 옮기면 더 엉망이 된다”는 논리로도 쓰일 수 있다.
과천 시민은 찬반으로 갈렸다. 원도심은 자산 가치, 외곽은 삶의 질. 같은 도시 안에서도 이해관계가 완전히 다르다.
과천시장의 4년 전 발언과 지금의 발언이 정반대라는 것, 마사회가 유일한 흑자 사업장을 스스로 폐쇄할 이유가 없다는 것, 영천경마장이 17년 걸렸다는 것, 제주에서 약물 검출 후에도 경주를 강행하며 수십억 베팅 수익은 그대로 가져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