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5부제 왜 갑자기 시작됐나, 25일간의 도미노 흐름 읽는 방법 

오늘(3월 25일), 차량 5부제가 시작됐다.
공공기관 직원은 번호판 끝자리에 따라 일주일에 하루 차를 못 몬다.
위반하면 징계까지 받는다.

“갑자기 왜?”라고 느꼈다면, 정상이다.
하지만 이건 갑자기가 아니다.
25일 전부터 도미노가 쓰러지고 있었다.
그걸 쭉 따라가봤더니, 소름 돋는 흐름이 보였다.

차량 5부제의 시작점, 2월 28일 중동에서 폭탄이 터졌다

2월 28일 새벽.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전역을 동시에 공습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핵시설, 군사시설이 타격당했다.
(관련 기사 미국 이란 공습 총정리, 타임라인부터 한국 경제 영향까지)

이란은 즉각 반격했다.
그리고 세계 원유 수송의 대동맥,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전 세계 원유의 약 20%가 이 좁은 바닷길을 지나간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가 이 해협을 통해 온다.
하루 80척이 지나던 곳에, 2척만 겨우 통과하는 상황이 됐다.
(관련 기사 하루 80척에서 2척으로, 호르무즈 봉쇄에 세계가 숨막힌다)

한국의 기름 수입길이 막힌 것이다.

차량 5부제 전에 기름값이 먼저 폭발했다

해협이 막히자, 유가가 치솟았다.
전쟁 전 배럴당 70달러대이던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했다.
전문가들은 봉쇄가 길어지면 140에서 179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항공유는 이미 배럴당 227달러까지 뛰었다.
(관련 기사 호르무즈 봉쇄 속 국제유가 급등, 실물 가격 200달러 돌파)

주유소 기름값은 리터당 2,000원을 넘겼다.

정부는 3월 13일,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30년 만에 정부가 기름값에 직접 상한선을 건 것이다.
휘발유 출고가 리터당 1,724원, 경유 1,713원으로 정했다.
(관련 기사 치솟는 기름값 잡힐까, 30년 만에 꺼낸 석유 최고가격제)

그래도 상황은 멈추지 않았다.

차량 5부제 직전, 기름만 문제가 아니었다

기름에서 뽑는 원료 나프타가 부족해졌다.
나프타는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을 만드는 핵심 재료다.
수입 나프타의 절반 이상이 호르무즈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LG화학이 여수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까지 한 사람당 2장만 구매 제한이 걸렸다.
정부는 나프타 수출 제한까지 검토에 들어갔다.
(관련 기사 공장 셧다운에 비닐 사재기, 공포가 현실로)

3월 24일에는 카타르가 한국 등 4개국에 LNG 장기 공급 계약 불가항력 선언을 했다.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카타르 LNG 생산시설이 피격됐기 때문이다.
수출 용량의 17%가 손상됐고, 복구에 3에서 5년이 걸린다고 했다.
(관련 기사 이란에 당한 카타르 결국, 한국과 LNG 장기계약 불가항력 선언)

기름도 부족하고, 가스도 끊기고 있는 상황.
이 시점에서 차량 5부제가 등장한 것이다.
이 흐름을 쭉 보니까 느껴지는 게 있다.
5부제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35년 전에도 있었다

이건 처음이 아니다.
1991년 걸프전 때, 한국은 전국 민간까지 포함한 차량 10부제를 약 두 달간 시행했다.
당시 뉴스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 10부제 운행으로 하루 5억, 한 달 150억원이 절약됩니다.”
위반 차량에는 10만원 과태료가 부과됐다.
(관련 기사 정부 차량 부제 검토, 걸프전 때 10부제)

1997년 외환위기 때도 홀짝제가 논의됐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2006년, 2008년, 2011년에는 공공기관 중심 요일제가 있었다.

전국 민관 모두에게 강제된 건 1991년이 마지막이다.
지금 민간까지 확대되면, 35년 만의 일이 된다.
여기서 발견한 패턴이 있다.
전쟁이 나면, 기름값이 뛰고, 기름값이 뛰면, 결국 내 차를 못 몰게 된다.
3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수순이다.

차량 5부제에서 전기차만 빠졌다, 시장이 뒤집혔다

정부는 전기차와 수소차를 5부제에서 제외했다.
경차와 하이브리드는 기존에 빠져 있었지만, 이번에는 포함됐다.

이 결정 하나가 자동차 시장을 흔들었다.
올해 1에서 2월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65.6% 급증.
이란전 직후 2주간 중고 전기차 판매는 40.8% 증가.
5부제 면제가 사실상 전기차의 가장 강력한 구매 이유가 된 것이다.
(관련 기사 차량 5부제에서 전기차 빠지고 하이브리드 포함, EV 판매 날개단다)

내연기관차를 가진 사람은 일주일에 하루 차를 못 몬다.
전기차를 가진 사람은 매일 탄다.
같은 도로 위에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걸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지금 전기차를 산 사람과 안 산 사람 사이에 일상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이 격차는 민간 5부제가 시작되면 더 커진다.

차량 5부제와 기름값 상한제를 동시에 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 더 눈에 띄는 구조가 있다.

정부는 지금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다.
하나는 석유 최고가격제. 기름값에 상한선을 걸어 소비자 부담을 낮추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차량 5부제. 차를 못 몰게 해서 기름 소비를 줄이겠다는 것.

기름값을 낮추면 소비가 유지되거나 늘어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운행을 제한하면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방향이 반대다.
(관련 기사 승용차 5부제와 최고가격제, 에너지 절약 엇박자 없어야)

여기에 3월 23일, 검찰이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를 유가 담합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짬짜미로 올렸다는 의혹이다.
(관련 기사 검찰, 유가 담합 혐의 4대 정유사 압수수색)

한편으로 해외 원유를 실제로 들여오는 것도 이 정유사들이다.
수사를 받는 상태에서 원유 도입 업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걸 조합해보면 하나의 구조가 보인다.
기름값은 내리면서 기름은 아끼라 하고, 기름 들여오는 회사는 수사하고 있다.
세 정책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는 셈이다.

차량 5부제 너머, 4월이 진짜 고비다

업계에서 4월 위기설이 돌고 있다.
호르무즈가 막힌 뒤 중동산 원유 공급이 끊겼고, 비축유와 대체 물량으로 버티는 중이다.

한국의 석유 비축량은 약 208일분, 정부 비축유 1억 배럴.
정부는 4월 중순 비축유 방출을 예고했다.
UAE에서 확보한 원유 2,400만 배럴과 IEA 공조 비축유 2,246만 배럴이 버팀목이다.
(관련 기사 끊긴 원유에 LNG 수급선도 위태, 고조되는 에너지 4월 위기설)

정부는 4월 위기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가동 중단 시점이 당초 4월 초에서 4월 하순에서 5월로 밀렸을 뿐, 사라진 건 아니다.
(관련 기사 4월 위기설 선 그은 정부, 비축유 다음 달 방출)

차량 5부제 뒤에 숨은 더 큰 변수

그리고 하나 더.
여러 기사를 조합하다가 발견한 건데, 이게 제일 무섭다.

이란은 호르무즈를 완전히 잠근 게 아니다.
위안화, 그러니까 중국 돈으로 거래하는 원유를 실은 배만 통과시켜주는 조건을 걸고 8개국과 협의 중이다.
(관련 기사 이란, 위안화 거래 조건에 8개국과 호르무즈 통과 협의)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만 기름을 사야 배가 지나갈 수 있다.
이건 단순한 통행 조건이 아니다.
세계 석유 거래의 기축통화 구조가 흔들릴 수 있는 신호다.

한국이 이 조건을 수용할 수 있을지, 미국의 동맹국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이 결정에 따라 한국의 원유 수급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차량 5부제 하나만 보면 불편한 정책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따라오면 보인다.
이건 기름 아끼자는 캠페인이 아니라, 나라의 에너지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지금 상황을 정리하면

시점사건
2.28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공습. 이란 호르무즈 해협 봉쇄
3.4하루 80척에서 2척 통과, 유가 100달러 돌파
3.10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예고, 기름값 리터 2,000원 돌파
3.13석유 최고가격제 전격 시행 (30년 만)
3.17이재명 대통령, 차량 5부제 및 10부제 검토 지시
3.18이란, 위안화 거래 조건 호르무즈 선택적 개방 협의
3.19나프타 부족으로 비닐 대란 조짐, LG화학 공장 가동 중단
3.23검찰, 4대 정유사 담합 혐의 압수수색
3.24카타르, 한국 등 LNG 장기계약 불가항력 선언
3.25차량 5부제 공공부문 의무 시행 (오늘)
4월 중순비축유 방출 예정, 원유 공급 중단 본격화 가능

앞으로의 시나리오, 숫자가 보여주는 것들

시나리오 1. 미국과 이란 협상이 타결되고 호르무즈가 열린다면 유가가 안정되고, 5부제가 해제되고, 일상이 돌아온다.

시나리오 2. 봉쇄가 4월에서 6월까지 이어진다면 비축유 방출에도 한계가 오고, 민간 5부제 의무화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유공장 가동 중단이 확산되면 비닐, 플라스틱, 자동차 부품까지 연쇄 영향이 온다. 전기 요금과 가스 요금 인상 압박도 본격화된다.

시나리오 3. 이란이 발전소 공격을 받으면 이란은 발전소를 다시 지을 때까지 호르무즈를 완전 봉쇄하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이 경우 유가는 역대 최고치 147달러를 넘어 미지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관련 기사 이란, 공격시 호르무즈 완전 봉쇄)

지금 차량 5부제는 이 모든 도미노의 중간쯤에 서 있다.
시작인지, 끝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는 확실하다.
이 흐름을 미리 읽은 사람과 모르고 있던 사람 사이에, 이미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
전기차를 산 사람은 매일 출근한다.
기름을 미리 넣어둔 사람은 덜 불안하다.
비닐 재고를 확보한 업체는 가격을 올리고 있다.

※ 블로그 썸네일 이미지는 AI로 작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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