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이 울었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그런데 지금, 이 영화를 둘러싼 왕사남 표절 논란이 거세다. 2026년 3월 9일, MBN 단독 보도 하나가 모든 걸 뒤집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쓴 시나리오와 너무 비슷하다.” 고인이 된 연극배우의 유족이 던진 이 한마디. 그리고 제작사의 즉각적인 “사실무근” 반박. 이 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왕사남 표절 논란의 시작, 엄흥도의 ‘진짜 후손’이 나타났다
이야기는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흥도의 31대손이자 연극배우였던 엄 모 씨. 그는 자신의 선조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다.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제목은 ‘엄흥도’. 방송사에 투고했고, 공모전에도 출품했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제작 불발. 그리고 2019년, 엄 씨는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남긴 건 유족과 한 편의 시나리오뿐이었다.
그런데 2026년 2월.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했다. 유족은 스크린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쓴 이야기잖아.” 유족은 제작사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시나리오의 출처를 밝히라고.
왕사남 표절 의혹의 핵심, ‘우연’으로 보기엔 너무 닮은 7가지
유족이 지목한 유사점은 7가지다. 단순히 “엄흥도와 단종이 나온다”는 수준이 아니다.
단종이 처음엔 밥을 거부하다가 엄흥도의 권유로 먹기 시작하는 과정. 영화에선 올갱이국, 시나리오에선 메밀묵. 음식은 다르지만 흐름이 같다. “맛있다고 전해달라.” 이 대사의 구조까지 닮았다.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려는 단종을 엄흥도가 구하는 장면. 엄흥도의 아들이 관아에 끌려가는 전개. 여기까지는 “역사 소재니까 비슷할 수 있지 않나?”라고 넘길 수도 있다.
왕사남 표절에 제작사가 보인 반응, “기록이 다 있다”
그런데 결정적인 부분이 있다.
실제 역사에서 단종의 궁녀는 여러 명이었다. 그런데 영화도, 시나리오도 ‘매화’라는 한 명으로 통합했다. 엄흥도의 아들은 실제 삼남이었다. 그런데 영화도, 시나리오도 외아들 한 명으로 줄였다.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동일한 방식으로 각색한 것이다.
(서울경제 상세 보도)
영화 제작사 온다웍스는 하루 만에 입장문을 냈다. 핵심은 세 줄이다.
“순수 창작물이다.” “창작 전 과정이 기록돼 있다.” “법적으로 단호히 대응하겠다.”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는 3월 11일 인터뷰에서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외부 시나리오를 가져온 게 아니라, 한 줄도 없었던 원안 단계부터 시작한 작품이다.” “트리트먼트 작업, 초고 작업을 같이 한 작가님들이 계시고, 계약 과정, 회의록까지 전부 남아 있다.” “장항준 감독까지 합숙하면서 각색 작업을 했다.”
(마이데일리 인터뷰)
그리고 하나 더. 온라인에서 “임 대표가 CJ ENM 출신이니 거기서 대본을 가져온 것 아니냐”는 의혹도 떠돌았다. 이에 대해 임 대표는 선을 그었다. “CJ ENM과 관련된 권리 문제나 분쟁은 전혀 없다. 원작이 있는 게 아니라 오리지널이라 퇴사 후 다시 추진한 것이다.”

왕사남 표절 논란 전에도, 한국 영화계에서 반복된 같은 패턴
사실 이건 처음이 아니다. 한국 영화사에서 천만 영화와 표절 논란은 늘 세트처럼 따라다녔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2012년에 천만 관객을 모았다. 그때도 같은 꼬리표가 붙었다. 1993년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와 핵심 설정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 왕의 대역이 오히려 진짜보다 백성을 위하는 리더가 된다는 구조. 제작진은 “참고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논란은 흥행 내내 따라다녔다.
(조선일보 2012년 보도)
드라마 ‘선덕여왕’은 2009년에 터졌다. 이건 법정까지 갔다. 뮤지컬 대본 작가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며 MBC와 작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심에서는 표절이 인정됐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독창적 설정들이 유사하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대법원이 뒤집었다. “접근했다는 증거가 부족하고, 유사성이 현저한 수준은 아니다.” 결국 원고 패소.
(로톡 판례 분석)
이 판결이 지금 왕사남 표절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선례다. 법원은 “비슷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 접근 가능성과 현저한 유사성,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증명되어야 한다.
(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3다8984 판결)
왕사남 표절, 이번엔 다른 점이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기사들을 쭉 모아서 읽어보니,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됐다.
선덕여왕 사건에서 대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핵심 이유는 접근 가능성 부족이었다. 피고가 원고의 대본을 봤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
그런데 엄 씨의 시나리오는? 방송사에 직접 투고했다. 공모전에 출품했다. 즉, 업계에 물리적으로 유통된 적이 있다. 이 점이 법적으로 접근 가능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제작사 측도 강력한 카드를 쥐고 있다. 2018년부터의 기획 기록, 회의록, 합숙 각색 과정이 모두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소재를 다룬 작품은 설정이 겹칠 수밖에 없다는 필수 장면 항변도 가능하다.
(한겨레 보도)
왕사남 표절 논란, 이 타이밍에 터진 이유
여기서 또 하나 발견한 게 있다. 타이밍이다.
1,170만 관객. 1,200만 돌파 직전.
이 숫자가 중요하다. 영화가 잘 되면 될수록, 누군가는 “내 이야기인데”라고 나설 동기가 커진다. 과거 ‘광해’도 300만 관객 시점에서 논란이 터졌다. 흥행이 뉴스가 되는 순간, 묻혀있던 유사성 주장도 수면 위로 올라온다.
유족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아버지가 평생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 방송사마다 거절당한 이야기. 그게 천만 관객 앞에 펼쳐졌다. 음식 이름만 바뀌었을 뿐 구조가 같다고 느꼈다면, 가만히 있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제작사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8년간 기획하고, 회사까지 나와서 만든 작품이다. 존재도 몰랐던 시나리오에 대해 “베꼈다”는 말을 듣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특히 기록이 남아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아시아경제 임은정 대표 인터뷰)
왕사남 표절 이후,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
이 모든 기사와 과거 사건들을 조합해보니, 결국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현재 상태를 정리하면 이렇다.
유족은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주장하지만, 제작사는 3월 11일 기준 “아직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측이 직접 대화한 적은 없다. 아직 소송이 제기된 것도 아니다.
과거 유사 사건들의 흐름을 보면, 이후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갈래다.
하나. 유족이 정식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이 접근 가능성과 실질적 유사성을 판단하는 법적 공방이 벌어진다. 선덕여왕 사건처럼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둘. 할리우드의 ‘커밍 투 아메리카’나 ‘터미네이터’ 사례처럼, 제작사가 합의금을 지급하고 크레딧에 이름을 넣는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법치뉴스 해외 사례 정리)
셋. 유족 측이 추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제작사의 창작 기록이 인정되면서 논란이 자연 소멸한다.
어떤 결말이 되든, 여기까지 모아놓고 보니 결국 이 한 가지로 귀결된다.
20년 전 방송사에 투고됐다가 묻힌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와 놀랍도록 닮은 천만 영화.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이건 지금으로선 그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법원의 판단이든, 양측의 대화든, 어떤 형태로든 사실이 밝혀져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