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힙 황서이 프로포폴 사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프로포폴이 얼마나 쉽게 새어 나왔는지, 그 역사를 따라가 보면 이 사건이 왜 터졌는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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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힙 황서이 프로포폴 사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2026년 2월 25일 저녁 8시 44분.
서울 반포대교 위를 달리던 검은색 포르쉐 SUV가 난간을 뚫었습니다.
20m 아래 한강 둔치로 추락했습니다.
차 안에서 쏟아진 건 충격적이었습니다.
프로포폴 빈 병, 약물이 담긴 주사기, 마취용 약제, 의료용 튜브.
경찰이 이틀에 걸쳐 수거해야 할 만큼의 양이었습니다.
운전자는 30대 여성.
인스타그램 팔로워 11만 명의 인플루언서 피치힙마법사 황서이.
병원과 맛집을 홍보하는 마케팅 대행업체 대표였습니다.
약물을 투약한 상태로 10km를 운전한 것으로 확인됐고, 사고 이틀 뒤 구속됐습니다.
사고 직후 250개 넘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던 인스타그램 계정은 삭제됐습니다.

(한국경제 – 반포대교 추락 포르쉐女, 유명 인플루언서였다)
프로포폴을 건넨 사람은 병원 직원이었다
3월 2일, 자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황서이에게 프로포폴을 직접 건넨 병원 직원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황서이가 업무상 관계를 맺어온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병원 마케팅 대행업체 대표와, 그 업체가 홍보해주는 병원 직원.
둘 사이에서 프로포폴이 오간 겁니다.
프로포폴은 현행법상 병원 밖으로 반출이 금지된 향정신성 의약품입니다.
일반인이 소지만 해도 5년 이하 징역, 5천만 원 이하 벌금입니다.
그런 약물이 개인 차량에 무더기로 실려 있었다는 건, 단순한 일회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프로포폴은 왜 이렇게 쉽게 빠져나오는 걸까. 13년 전부터 반복된 패턴
여기서 “또?”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맞습니다. 프로포폴이 병원 밖으로 새어 나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2013년, 배우 이승연과 박시연, 장미인애가 프로포폴 상습 투약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보톡스, 지방분해 시술을 빙자해서 맞은 횟수가 충격적이었습니다.
박시연 185회. 이승연 111회. 장미인애 95회.
전부 강남의 한 병원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프로포폴을 놔준 의사는 이후 스스로도 프로포폴에 중독되어 사망했습니다.

(연합뉴스 – 프로포폴 투약 장미인애·이승연·박시연 집행유예)
(중앙일보 – 프로포폴 상습 투약, 박시연 185회)
강남 VVIP 성형외과에서 드러난 또 다른 이름들
2013년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2020년, 서울 강남 신사동의 한 VVIP 전용 성형외과가 수사선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프로포폴을 맞은 이름들이 하나씩 나왔습니다.
배우 하정우. 2019년 1월부터 9월까지 19차례 투약.
흉터 치료를 빙자했지만, 수면마취가 필요 없는 시술에도 프로포폴을 맞은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동생 이름으로 차명 진료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같은 병원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도 프로포폴을 투약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애경그룹 2세 채승석 전 대표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결국 이 병원의 원장은 재벌가에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해준 혐의로 징역 3년 실형을 받았습니다.
(BBC 코리아 – 이재용 프로포폴 불법 투약 벌금 구형)
(한겨레 – 이재용에 벌금 7천만원 구형)
(일요신문 – 하정우는 왜 VVIP 전용 성형외과에서 프로포폴을 맞았나)
법이 바뀌었는데도 막히지 않았다
이런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법은 조금씩 강화됐습니다.
프로포폴은 원래 일반 마취제였지만, 2011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됐습니다.
2025년 2월에는 의사가 자기 자신에게 프로포폴을 처방하는 셀프 처방마저 전면 금지됐습니다.
그런데 법이 바뀌어도 유통 경로는 살아 있었습니다.
2025년 12월, 검찰은 미용 시술을 빙자해 62명에게 989차례 프로포폴을 투약하고 8억 원을 챙긴 의사를 구속했습니다. 이때 의료용 마약 관련 범죄로 총 41명이 적발됐습니다.
(연합뉴스 – 1천회 프로포폴 놔주고 8억 수익)
(경향신문 – 미용시술 빙자 프로포폴 3년간 투약)
프로포폴이 막히자, 제2의 프로포폴이 등장했다
프로포폴 단속이 강화되자, 다른 약물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피치힙 황서이 사건이 터지기 불과 2주 전인 2026년 2월 11일.
에토미데이트라는 전신마취제를 대량으로 불법 유통한 일당이 검거됐습니다.
수법이 놀라웠습니다.
의약품 도매업체가 베트남 수출용으로 위장해 약물을 빼돌렸고, 중간 유통은 조직폭력배가 맡았습니다.
강남에 병원처럼 보이는 가짜 피부과를 차려서 주사이모에게 시술까지 시켰습니다.
의사 없이, 응급 장비도 없이.
원가의 50배 폭리를 취하며, 6만 명분에 달하는 3만여 앰풀을 유통했습니다.
(서울경제 – 강남 가짜 병원서 제2 프로포폴 50배 폭리 챙긴 조폭들)
(한겨레 – 제2 프로포폴 6만명분 불법 유통한 조폭 검거)
(조선일보 – 제2의 프로포폴 6만명분 빼돌려 유통)
피치힙 황서이 프로포폴 사건이 보여주는 진짜 이야기
이 사건을 타임라인으로 놓고 보면 흐름이 선명해집니다.
2013년, 연예인들이 강남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맞았습니다.
2020년, VVIP 전용 성형외과에서 재벌과 톱배우까지 투약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25년, 셀프 처방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미용 시술을 빙자한 투약은 여전히 성행했습니다.
2026년 2월, 프로포폴 대신 에토미데이트가 조폭 유통망을 타고 강남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같은 달, 병원 마케팅 대행업체 대표의 차에서 프로포폴이 무더기로 쏟아졌습니다.
피치힙 황서이는 단순한 인플루언서가 아니었습니다.
병원을 홍보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병원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약물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 안에 있었던 겁니다.
현재 경찰은 프로포폴 일련번호를 추적 중입니다.
어느 병원에서, 언제, 얼마나 빠져나왔는지를 역추적하고 있습니다.
대한의사협회도 의료용 마약류 관리 체계를 위협하는 중대 사안이라며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황서이의 마케팅 업체는 병원 전문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고 자체 홍보했습니다.
다년간 병원 DB를 활용한다고 광고했습니다.
즉, 한두 곳이 아니라 여러 병원과 업무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프로포폴을 건넨 병원 직원이 자수한 건 시작일 뿐입니다.
수사가 확대되면, 이 업체와 관계를 맺었던 다른 병원들의 약물 관리 실태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 병원들의 고객 중에 또 어떤 이름이 나올지, 지금 온라인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YTN – 프로포폴 내가 줬다, 경찰 병원 관계자 진술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