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이선균, 엔딩 크레딧에 새겨진 이름 하나가 울린 이유

왕과 사는 남자 이선균, 940만 관객이 본 엔딩에 그 이름이 있었다

2026년 2월,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무서운 속도로 극장을 채우고 있었다.

개봉 한 달 만에 940만 관객을 돌파했다. 천만이 눈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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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관객들 사이에서 영화 내용이 아닌, 엔딩 크레딧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2월 26일, 한 팬이 SNS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스크린을 찍은 사진이었다. 거기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제작진은 다음 분들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싸이, 김희선, 임윤아, 정웅인, 류승완 감독. 낯익은 이름들 사이에 이선균이라는 세 글자가 조용히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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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멈칫했다. 2023년 12월, 우리 곁을 떠난 바로 그 배우.

제작진에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단 한마디. 노코멘트. (관련 기사)

설명하지 않았다. 해명도, 홍보도 아니었다. 그냥 이름 석 자를 거기 남겨둔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그의 절친이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장항준 감독이다.

그리고 장항준과 이선균은 연예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찐친이었다.

시작은 2014년이었다. 영화 끝까지 간다. 장항준이 각색을 맡고, 이선균이 주연을 맡았다. 그때 처음 만났다. (관련 기사)

만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선균은 장항준의 작업실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사흘에 한 번씩 만날 정도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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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둘은 tvN 예능 아주 사적인 동남아에 함께 출연했다. 캄보디아로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이선균은 카메라 앞에서 장항준을 이렇게 소개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재미있는 사람.” (관련 기사)

그해 4월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도 함께 나왔다. 장항준의 유튜브 넌 감독이었어에도 이선균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둘은 그냥 친구가 아니었다. 10년을 함께한 사람이었다.

이선균, 그 해 겨울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2023년 10월. 이선균의 이름이 전혀 다른 맥락으로 뉴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마약 투약 혐의.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가 그를 피의자로 입건했다. (관련 기사)

10월 28일, 첫 번째 경찰 출석. 간이시약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11월, 모발 100가닥에 대한 정밀감정 결과도 나왔다. 역시 음성. 경찰 스스로 “최근 10개월간 투약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관련 기사)

다리털 감정까지 했다. 감정 불가. 총 네 차례 마약 검사에서 단 한 번도 양성이 나오지 않았다. (관련 기사)

그런데도 수사는 멈추지 않았다.

12월 23일, 세 번째 소환 조사. 19시간 동안 이어진 밤샘 조사였다. 이선균은 이 자리에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직접 요청했다. 제발 진위를 가려달라는 뜻이었다. (관련 기사)

그 다음 날, 변호인을 통해 마지막 입장을 냈다. 너무 억울하다고. (관련 기사)

그리고 2023년 12월 27일.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 차량 안에서 이선균이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48세. (관련 기사)

남은 사람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2024년 1월 1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봉준호 감독이 마이크 앞에 섰다. 옆에는 윤종신, 김의성, 그리고 장항준이 있었다.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2,000명이 넘는 문화예술인이 이름을 올린 성명서가 발표됐다. 송강호도 연서명에 참여했다. (관련 기사)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고인의 수사에 관한 내부 정보가 최초 유출된 시점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경찰의 언론 대응이 적법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관련 기사)

핵심은 수사 정보 유출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밝혀졌다. 인천경찰청 소속 경위가 이선균의 수사 진행 보고서를 촬영해 기자들에게 넘긴 사실이 드러났다. 체포, 구속영장 청구. (관련 기사)

2025년 12월, 이 경찰관은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파면 불복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관련 기사)

수사 정보를 유출한 건 경찰만이 아니었다. 검찰 수사관까지 가담한 것으로 확인돼 함께 검찰에 송치됐다. (관련 기사)

장항준이 선택한 추모의 방식

장항준 감독은 그 성명서 발표 현장에 직접 서 있던 사람이다. (관련 기사)

그런 그가 자신의 영화 인생 최대 흥행작의 엔딩 크레딧에, 친구의 이름을 조용히 넣었다.

대대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언급하지도 않았다. 묻는 기자에게 노코멘트라고만 했다.

화려한 추모사도 아니었다. 뉴스에 나오려는 행동도 아니었다.

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어두워지고, 크레딧이 조용히 올라가는 그 순간. 수백 개의 이름 사이에 이선균이라는 세 글자를 살짝 끼워넣은 것이다.

아내 김은희 작가가 “오빠, 이건 오빠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야. 무조건 해야 해”라고 추천해서 시작된 이 영화에 (관련 기사), 장항준은 자신이 가장 아끼던 친구의 흔적을 남겼다.

이 침묵이 의미하는 것

제작진이 노코멘트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선균은 마약 혐의 수사를 받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추모한다고 말하는 순간, 영화는 의도치 않은 논쟁에 휩싸일 수 있다. 천만을 향해 달리는 흥행작에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장항준은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네 차례 마약 검사에서 모두 음성이 나왔던 사람. 19시간 밤샘 조사를 받으며 거짓말 탐지기를 자청했던 사람. 수사 정보가 불법 유출되어 여론재판에 내몰렸던 사람. 그리고 너무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사람.

장항준에게 이선균은 사건의 피의자가 아니었다. 10년을 함께한 친구였고,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줬던 단 한 명이었다.

940만 관객이 본 엔딩 크레딧 속 그 이름 석 자는, 장항준 감독이 어떤 설명도 없이 보여준 대답이었다.

나는 이 사람을 잊지 않았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 블로그 썸네일 이미지는 AI로 작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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