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18년 된 영상 하나를 꺼내든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한국 식탁 전체를 흔들어버렸다.
지금 SNS를 점령한 봄동비빔밥 열풍.
이 현상이 왜, 어떻게 터졌는지 하나씩 따라가 보면 꽤 흥미롭다.
봄동비빔밥의 시작. 2008년, 강호동의 한 끼
2008년 2월.
KBS2 예능 1박 2일 전남 영광편이 방송됐다.
강호동은 시골 할머니 집 텃밭에서 직접 봄동을 뜯었다.
할머니가 양푼에 참기름, 고춧가루를 넣고 슥슥 비벼주셨다.
강호동은 그걸 허겁지겁 먹더니 한마디 했다.
“배추가 고기보다 맛있네요.”
이 장면 하나가 전설이 됐다.
첫 번째 역주행. 피식대학이 불을 지폈다
사실 이 영상이 처음 다시 뜬 건 2024년 5월이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을 방문한 영상에서 지역 비하 논란이 터졌다.
시골 어르신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가 됐고, 여론이 들끓었다.
그때 사람들이 비교 대상으로 꺼낸 게 바로 강호동의 1박 2일이었다.
“강호동은 할머니 손맛에 감동받아 눈물까지 글썽이며 먹었는데.”
“지방 어르신을 이렇게 존중할 수 있구나.”
피식대학의 오만함과 대비되면서, 강호동의 봄동비빔밥 먹방이 지방을 대하는 태도의 교과서로 재조명됐다.

(피식대학 지역비하 논란에 재조명된 강호동 봄동비빔밥, 뉴스클립)
이게 첫 번째 불씨였다.
두 번째 역주행. 두쫀쿠가 지고, 봄이 왔다
2024년 하반기부터 2026년 초까지.
한국 디저트 시장을 지배한 건 두쫀쿠, 두바이 쫀득 쿠키였다.
두바이 초콜릿에서 시작된 열풍은 쿠키, 김밥, 대창까지 번졌다.
편의점마다 품절 대란이 벌어졌고, 두바이까지 역수출됐다.
(두쫀쿠 열풍, 두바이 상륙, KBS 뉴스)
그런데 2026년 2월, 분위기가 달라졌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달달한 건 이제 좀 질린다”는 반응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그 타이밍에 유튜브 알고리즘이 움직였다.
강호동의 18년 전 봄동비빔밥 먹방이 숏폼으로 잘려 나갔고, 피드를 장악했다.
조회수 630만 뷰.
SNS에는 이런 말이 떠돌았다.
“두쫀쿠는 가라. 이제 봄동의 시대다.”
(두쫀쿠 눌러버린 봄동비빔밥, KBS 이슈픽)
레시피 전쟁. 류수영이 먼저 만들었다
사실 강호동의 봄동비빔밥을 방송에서 재현한 사람이 있었다.
배우 류수영.
2022년 KBS2 편스토랑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강호동 형님이 먹었던 봄동비빔밥, 저도 옛날에 방송 보고 진짜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직접 레시피를 공개했다.
고춧가루, 간장, 참기름, 설탕 약간.
소금에 절이지 않고 바로 비비는 게 포인트였다.
이 영상도 2026년 2월, 함께 역주행했다.
요리 유튜버들이 류수영 레시피 대 강호동 원본 비교 영상을 올리면서 열풍은 더 커졌다.

(편스토랑 류수영, 강호동 봄동비빔밥 재현, MK스포츠)
봄동비빔밥 열풍의 나비효과. 봄동이 금동이 됐다
인스타그램 #봄동 게시물 약 4만 건.
MZ세대가 실제로 마트에서 봄동을 사기 시작했다
문제는 공급이었다.
봄동의 전국 생산량 40%를 차지하는 전남 진도.
하필 설 명절 전후로 한파와 폭설이 덮쳤다.
냉해 피해로 출하량이 뚝 떨어졌다.
결과는?
봄동 상등급 15kg 도매가가 전년 대비 78.2% 폭등.
3만 원대이던 가격이 5만 원대를 넘어섰다.
한때 6만 원까지 치솟았다.
별명이 붙었다. 금동.
(봄동 가격 78% 급등, 금동 별명까지, 한국경제)
진도 농민들은 웃었지만, 마트에서 봄동을 집어 든 소비자들은 깜짝 놀랐다.
(진도 농민들 웃음꽃, 뉴스1)
“그거, 진짜 봄동 맞아?”
열풍이 한창인 가운데, 예상치 못한 지적이 나왔다.
“강호동이 먹은 건 봄동이 아니라 얼갈이배추일 수 있다.”
방송 자막에는 봄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영상 속 채소의 생김새를 분석한 결과, 의견이 갈렸다.
봄동은 잎이 짧고 납작하게 땅에 퍼진다. 아삭하고 달콤하다.
얼갈이배추는 줄기가 길쭉하고 위로 솟는다. 쌉싸름하다.
영상 속 채소는 얼갈이배추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것.
(630만 뷰 강호동 비빔밥의 배신, 세게일보)
결국 “맛있으면 그만”이라는 반응과 “제대로 알고 먹자”는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
봄동비빔밥 원조, 본인이 등판하다
이 모든 열풍의 중심에 있던 강호동.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3월 2일.
쿠팡플레이 새 예능 강호동네 서점 유튜브 채널에 티저 영상이 올라왔다.
본인등판이라는 자막과 함께.
“여러분, 봄동 비빔밥이 왔습니다.”
양푼에 밥을 한 주걱 가득 담고, 참기름 두르고, 쓱쓱 비볐다.
한 입 먹더니 역시 그 한마디.
“어무이, 배추가 고기보다 진짜 맛있네예.”
18년 전 그 대사 그대로였다.
(강호동, 18년 만에 봄동비빔밥 재현, 뉴시스)
(강호동네 서점 봄동비빔밥 티저, 쿠팡플레이 유튜브)
강호동네 서점은 3월 6일 첫 공개를 앞두고 있었다.
봄동비빔밥 열풍의 타이밍은, 이 프로그램의 론칭과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
봄동비빔밥 열풍, 그 안에서 읽히는 것들
이쯤에서 이 흐름을 한 발 물러서서 보면, 몇 가지가 보인다.
첫째, 이건 순수한 유행이 아닐 수 있다.
KBS는 2월 23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 강호동 봄동비빔밥 영상을 다시 편집해 올렸다.

ㅋ
(KBS 엔터테인먼트, 강호동 봄동 먹방 재편집 업로드, 서울신문)
쿠팡플레이는 3월 6일 강호동네 서점 첫 공개를 앞두고 봄동비빔밥 티저를 뿌렸다.
인스타그램에는 광고 태그가 붙은 인플루언서 콘텐츠가 올라왔다.
알고리즘이 자연스럽게 띄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KBS의 옛 콘텐츠 재활용 전략과 쿠팡플레이의 신규 예능 론칭 마케팅이 겹쳐 있다. 두 플랫폼의 이해관계가 봄동비빔밥이라는 키워드 위에서 만난 셈이다.
둘째, 봄동 가격은 곧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유통업계는 출하량이 3월 중순 이후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진도 농민들도 “3월 중순까지 이 가격이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지금이 피크다.
지금 비싼 값에 봄동을 사서 실망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셋째, 지금 마트에서 파는 봄동이 진짜 봄동인지도 확인이 필요하다.
봄동과 얼갈이배추는 생김새가 비슷하다.
수요가 폭발한 상황에서 유통 과정의 혼동 가능성도 존재한다.
봄동은 잎이 짧고 납작하게 벌어져 있고, 얼갈이배추는 줄기가 길고 위로 뻗는다.
맛도 다르다. 직접 확인하고 구매하는 게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