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전격 공습했다.
37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진 바로 그 순간.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란 출신 모델 호다 니쿠가 SNS에 글을 올렸다.
“왜 이란 국민들이 자국 폭격 소식에 기뻐하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진심으로 전쟁을 기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란 국민은 47년간 너무 많은 고통을 견뎌왔다.”
이 한마디가 한국 인터넷을 뒤흔들었다.
미국 이란 전쟁 이유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건, 뉴스가 아니라 이 여자의 목소리였다.

(뉴시스 전쟁 기뻐할 사람 없지만 韓 활동 미스 이란 출신 모델의 절규)
미국 이란 전쟁 시작점, 1979년 모든 게 뒤집힌 해
이 전쟁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시작은 1979년이다.
그 해,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다.
친미 성향이던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반미 이슬람 정권이 들어섰다.
곧이어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했다.
미국 외교관 52명이 444일간 인질로 잡혔다.
이 사건 하나로 미국과 이란은 국교를 끊었다.
그리고 46년이 지난 지금까지, 두 나라는 한 번도 화해하지 못했다.
(조선일보 1979년부터 이어진 악연 격동의 미국 이란 관계)
진짜 비극, 이란 국민이 당한 일
호다 니쿠가 왜 그렇게 절박했는지 이해하려면, 이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2022년 9월.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됐다.
그리고 구금 중 의문사했다.
이란 전역이 들끓었다.
“여성, 생명, 자유.”
수십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란 정부의 대응은 잔혹했다.
총을 쐈다. 수천 명이 감옥에 갇혔다.
유명 여배우 타라네 알리두스티는 히잡을 벗은 사진을 올렸다가 체포됐다.

(BBC 이란 유명 여배우가 히잡 벗은 사진을 공개한 이유)
그로부터 3년.
2025년 말에서 2026년 초, 이란에서 다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터졌다.
경제난이 극에 달한 데다, 국민들의 분노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이번엔 규모가 달랐다.
이란 정부는 인터넷과 전화를 차단하고, 군을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했다.
인권단체 추산 사망자만 최소 3,000명에서 최대 2만 명.
현대 이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학살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겨레 이란 시위 사망자 최소 544명 신정체제 47년 만에 최대 위기)
(위키백과 2026년 이란 학살)
호다 니쿠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호다 니쿠는 그냥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아니다.
1996년 이란 출생.
미스 이란 2018 3위.
한국 사극 주몽과 대장금을 보며 한국을 동경했고,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지금은 한국 국적을 가진 모델이자 방송인이다.

그녀는 이란에서 히잡을 강요받았다.
한국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히잡을 벗었다.
2026년 1월, 이란 시위가 유혈 참사로 번지자 그녀는 한국어로 영상을 찍었다.
“이란 사람들은 자유와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인터넷도, 전화도 끊겼다.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
이 영상은 한국 주요 뉴스에 보도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선일보 인터넷도 전화도 막혔다 한국 거주 미스 이란의 호소)
(중앙일보 1만명 희생에도 싸우고 있다 미스 이란 한국어로 호소한 사연)
그 후, 하메네이가 사라진 세상
2월 28일 공습.
3월 1일, 하메네이의 사망이 공식 확인됐다.
37년간 신정일치 체제의 정점에서 군림했던 그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호다 니쿠는 다시 SNS에 글을 올렸다.
“하메네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두 번째 날.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다고 말할 만큼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도 던졌다.
“이틀 만에 자국 비무장 민간인 4만 명을 죽일 수 있는 정부가 핵무기를 갖게 된다면, 그걸 평화적으로 쓸까?”
한국에 사는 이란인들의 반응도 갈렸다.
“독재가 끝나면 고향에 갈 수 있다”며 축배를 든 사람들이 있었고,
“가족 안부를 확인할 수 없어 잠을 못 잔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동아일보 미스 이란 출신 모델 하메네이 사망에 많은 국민이 기뻐해)
(매일경제 자유 되찾길 가족들 걱정 잠못 이루는 이란인)
(뉴시스 공습 후 인터넷 끊긴 이란 재한 이란인들 가족 안부 걱정)
미국 이란 전쟁 이유 너머, 강남 테헤란로가 품고 있는 의미
한국인들이 보내는 응원 중 유독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강남역에 테헤란로가 있듯이, 대한민국과도 좋은 일만 있기를.”
이 댓글이 공감을 얻은 데는 이유가 있다.
1977년, 이란 테헤란 시장이 서울을 방문해 자매결연을 맺었다.
그때 서울 강남에 테헤란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란 테헤란에도 서울로가 있다.
두 도시가 서로의 이름을 나눈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49년이 흐른 지금, 그 이름만이 두 나라의 우정을 기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란의 수도가 강남 한가운데 테헤란로 역사 재조명)
이 전쟁이 끝난 뒤 예측되는 것들
지금 상황을 종합하면, 앞으로 주목해야 할 흐름이 보인다.
첫째, 이란의 정권 교체는 아직 불확실하다. 칼라일그룹은 정권 교체 확률을 약 30% 이하로 봤다. 하메네이가 사라졌지만 혁명수비대(IRGC)는 여전히 건재하다.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는 한, 당장의 체제 전환은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BBC 아직 유지되고 있는 이란 정권 향후 며칠이 관건)
(Bloomberg 이란 정권 교체 확률 30% 이하)
둘째, 이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건, 2026년 초 대규모 시위, 그리고 지금 이 전쟁까지. 세 번의 거대한 파도가 겹쳤다. 정권이 살아남더라도 예전처럼 통치할 수는 없다.
셋째, 호다 니쿠 같은 디아스포라 즉 해외 거주 이란인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란 정부가 인터넷을 차단해도, 해외에 있는 이란인들이 실시간으로 진실을 전하고 있다. 호다 니쿠가 한국어로 올린 영상 하나가 한국 주요 뉴스를 탔다는 사실 자체가, 이 흐름의 증거다.
넷째, 한국과 이란의 관계도 새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미국 편도, 이란 편도 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이미 자유 이란을 지지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테헤란로라는 이름이 49년 만에 다시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